□ 사월달은 첫여름으로쳤다。음력을 쓸 때 일이지만 아직도 구습에 젖은 탓인지 절기는 역시 음력으로 따져야 계절에 부합되는 것 같아서 아리숭해진다。서울에서는 사월달은 쑥갓이 한창이고 아욱으로 국을 끓이는 것이 시식(時食)이다 □
미나리는 이미 한철 지나서 강회를 만들려면 속대를 뽑아 연한 가지만 쓰게 된다。용어(용魚)는 가시가 세서 회는 어림도 없고 도미국이 제철이다。
『생선 도미드렁사려』목청 좋게 외치는 도미장수의 익살스러운 소리를 못듣는 것이 못내 아쉽다。4월달부터는 일난풍화(日暖風和)하여 산정(山亭)놀이, 들놀이가 한창인데 어려서 내조부(祖父)가 시회(詩會)를 주최할 때가 있어서 강정(江亭)에 따라나간 일도 있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일중의 하나이다。강심에 배를 띄우고 달빛을 바라보면 물속에 또하나의 달이 있어서 물결따라 달그림자가 부서지는 것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기억은 더욱 새롭다.
요즈음도 한강에서 뱃놀이는 여전하나 그 노는 태도는 너무나 달라졌다。모든것이 다 달라졌다지만 인제 한강은 뱃놀이를 하기에는 너무나 개발됐는가 싶다。엇다가 배를 대고 어느 나무그늘에서 달빛을 바라볼지 어처구니 없이되고 만 것이다。
조국의 현대화란 마치 달에서 계수나무가 사라지듯이 풍치니 운치니, 그윽한 옛꿈을 모조리 파헤치는 두려움에 긴 한숨이 나온다。
게다가 나에게 있어서 사월달 초닷새날(初5日)은 내 생일(生日)이라서 어려서 어머님이 차려주시던 생일음식은 이제는 아는 이 조차 드물어지고 송편 대신에 케익이 등장하고 진솔보선 대신에 화학섬유로 짠 양말이 등장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생일이 되면 어머님이 지어주신 생이부임을 하고, 어른들에게 절을 했다。
생일을 맞이하여 부모의 공을- 어른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뜻이었다。그러나 인제는 생일날 부모에게 감사드리는 미풍은 거의 없어졌다。옛 법 버리지 말고 새 법내지 말라는 옛 어른의 말씀을 따를 수 없겠지만 아무리 새 법을 따르더라도 더러는 옛 법을 남기는 것이 좋을까싶 다。
생일날 부모, 장상에게 절을 하는 풍습은 인간을 기계에서 병아리까듯 임의생산을 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또 몰라도 부모의 사랑 부모의 은공 더욱이 어머님의 자애 그런 것을 일컺는 마당에 어찌 생일날, 감사드리는 마음씨가 없을까 보냐。
나는 이제 생일이 와도 감사드릴 어른들은 다 세상을떠 나시고 남은이라고는 나보다 사오세위되는 당고모(堂姑母)가 두 분계 시다。벌써 육십년도 더지난 일이지만 당고모 등에 업혀 귀염받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두분은 모두 팔십이 내일모레가 되는 분이지만 만나뵈오면 어려서 등에 업히던 때 그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금년생 일에는 마음먹고 두 분 아주머님께 감사하는 절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
내 생일날이 가까워오면 어머님은 새 옷을 손수 지으시고 떡을 해도 가지가지 골고루 장만해서 먼 이웃에까지 기쁨을 나누시었다。이 못난 아들을 어쩌면 그렇게 귀엽게 보시고 자랑스러워 하시였는지 지금도 고달플 때나 애타는 일이 있으면 아내와 아들딸들에게는 말도하지 않고 밤중만 한하여 혼자서『어머니!』를 부르며 하염없이 운다。가슴이 쓰라리다 못해 아파진다。어째서 이런버릇이 생겼는지 그 원인은 나도 모른다。어쨌든지 나는 4월달만 되면 생일이되고 이무렵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십이세부터 길을 떠나 방랑을 하며부터 나는 여러 번 내 생일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님은 반드시 생일떡을 마련해서 이웃에까지 나누었다하니 내가 이토록 어머님을 못잊은 것은 어머님께 향한 효성이라기보다 아직도 어머님의 끝없고 한없으신 사랑이 아쉬워서인가 싶다。그래서 사월달은, 나에게 있어서 사월달은, 어머님의 사랑이 아직도 아쉬워서 어머니!를 부르며 고달픈 하소연을 하는 계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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