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신부님! 지난 번에는 오래간 만에 만나뵙고 장시간 한담할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대단히 기뻤습니다。신부님은 항상 한담할 의향을 가지고 계시고 그러한 문제를 마련하고 계시고 그러한 시간을 참으로 즐기시는 것을 볼 때 메말랐던 마음이 흐뭇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때 사회주의자들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생활을 사회의 기생충 같은 생활이라고 단정해버린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한가라는 것을 전연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됩니다。요즘은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여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여가의 미래학」이라는 것이 학계의 심심치 않은 화제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여가」는「자유」와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자유가 어렵듯이 여가도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소인이 한거하면 선을 뒤집어서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대인이나 군자만이 한거할 능력이나 자격이 있다는 뜻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물질적 생활에만 몰두해오던 경제학이 부에 여유가 생기자 비경제 가치를 다루는 윤리학에 근접해오듯이 비사회적이라고 생각되면 여가라는 것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벌써 오래 전부터입니다만 현대인들의 커다란 과제의 하나는「현실 참여」라는 것입니다。특히 지성인의 현실 참여니 종교인의 현실 참여니 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본시 지성이나 종교는 현실을 떠난 것이 결코 아니었으나 근대 사상 이후로 그것이 현실과 분리되는 현상이 생기고 무능화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수정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그러나 한국의 천주교는 이러한 근대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사실은 지난 번에 화제의 대부분이「3ㆍ1운동」에 집중된 것도「천주교회와 사회 참여」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교회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역사적 현실사회 내에 실존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초자연의 생명에로 이끄는 것이 그 사명이라면 자연인이 구체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국가와 사회와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인 것입니다。헌데 주지되어 있는 바와 같이 개화 이래로 우리 민족정신사상에 최대의 애국운동이었던 3ㆍ1운동에 천주교회가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은 크게 마음에 걸리는 일입니다。
더욱이 그 운동의 지도자들 중에는 프로테스탄트 불교 천도교 등 각 교파에 속하는 종교인들이 주동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특히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전래한 지 40년 정도의 역사밖에 안 되는 그 당시에 이미 곳곳에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종로 한복판에 YMCA회관을 가지고 있어서 독립운동과 개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어왔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천주교가 우리나라 개화에 끼친 선도적인 공이 크다는 것을 사가들은 의심하지 않는 듯하나 그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첫째 프로테스탄트라는 것은 가톨릭에 대해서 반접하는 혁신 세력이었고 가톨릭은 그에 대해 보수적인 것이었으며 둘째로 근대화의 기본 사상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적 구호는 천주교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이러한 사실을 해명하시기보다는 다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1919년의 3ㆍ1운동 당시 우리나라 전체의 교세는 교우 수가 겨우 8만8천에 불과했으며 주요한 각 본당의 주임신부는 佛國人이었다는 것과 또한 파리외방전교회라는 단체는 교육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전교사업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교육사업까지 기대할 수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사실은 장구한 세월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받아온 치명자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도시에 나와서 생활하기를 꺼려하고 산간벽지에 숨어 살기를 좋아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교우들이 도시에는 많이 살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하였습니다。천주를 배반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거부하고 깨끗이 치명한 순교자들의 자손의 가슴에 남아 있는 흔적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사회 참여의 권한점이겠습니다。초자연계와 접해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모든 사회 참여와 현실 참여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우리 천주교회사는 아직도 이 원점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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