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바티깐」공의회와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에는 새로운 물결이 조수처럼 밀어닥쳤습니다。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러했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대로의 특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한국 천왕교회사는 찬란한 순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전 세계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치명 복음들의 용기와 신앙일 것입니다。그동안 한국 천왕교회가 남긴 신앙의 유적은 오로지 이 순교정신이라고 생각됩니다。참으로 귀중하고 훌륭한 유적입니다。한국 가톨릭신자의 모든 신심 내용은 직접 간접으로 이 순교정신과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 발전의 가장 큰 추진력이 되어온 정신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은 원점입니다. 성탄 바로 다음날 순교자 스페파노 성인의 축일을 지내듯이 구세주의 첫 선물은 치명이며 참으로 어떠한 뜻에 있어서나 치명할 각오가 없이는 구령의 길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치명하는 은혜을 일은 순교자들은 다행이며 큰 영광입니다。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일승에 영생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인간은 역사와 사회 속에 살면서 역사와 사회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순교정신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집니다。그러나 그것은 이미 역사와 사회의 역사적이고 초사회적인 것에 중점이 옮겨져 있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따라서 순교라는 것은 구세주의자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일 만큼 현세에서 한 발을 영원한 세계로 옮겨놓은 엄숙한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알고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생활 태도가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것 같이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물결은 방향이 다릅니다。역사와 사회 속에서 세속적인 것과 대화를 통해서 다같이 천주의 백성이 되자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닌가 합니다。화해ㆍ관용「아죠르나멘토」이런 것이 그「슬로건」으로 나타나 있습니다。현대라고 이단이 없을 리 없겠지만 익단에 대해서 파문을 선언하지 않은 유일한 공의회라고 합니다。혹심한 박해에 위축되고 순직정신으로 무장되어 아직도 사회와 역사에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습성이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너무도 새로운 물결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3백년 전의「트리엔트」공의회 정신으로 프로테스탄트 교우들에게 대한 진압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천왕교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에게 대한 우월감 속에 잠자고 있다가 교회 일치의 물결에 벽이 무너지고 보니 갑자기 우물 안 개구리 격이 된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란 근대 사상의 원동력의 하나였다는 것을 전연 무시하고 있었으니 백년 전의 제1차「바티깐」공의회가 거부한 MODERNISM에 대한 이해도 온데간데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도 변하느냐는 생각을 하는 이도 많은 모양인데 가톨릭 교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지금 장구한 미래를 위해서,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원대한 구상을 새로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시야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사정 거리를 최대한으로 멀리 잡는 것입니다。프로테스탄티즘이나 모던이즘을 회피하거나 버리지 않고 대화와 이해를 통해서 다같이 천왕의 백성으로 일치하자는 것은 양보도 절애도 후퇴도 아닌 참으로 제도의 관용의 정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새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옛 것을 버린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온고지신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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