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인간은 무엇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또한 무엇을 하는 것일까。이러한 시원적인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부터 나에게는 너무나 벅차고 괴로운 일이다。
어느 겨울날 밤 따뜻한 방에 난롯불은 빵갛게 불불고 있었다. 잠시 더운 열기를 식히려고 창을 열었을 때 눈보라 치는 찬바람을 안고 한 마리의 이름 모를 새가 갑자기 날아들어왔다。새는 겁에 질린 듯 은방울 푸드득거리다 다시 좁은 문 틈으로 날아가버렸다。춥고 얼어붙은 겨울 하늘로, 한 마리 새가 잠시나마 따뜻한 불빛에 몸을 녹인 것은 불과 2ㆍ3분, 다시 지척도 없는 세상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어쩌면 인간도 한 마리 새와 같은 것。한 치의 앞길도 아는 사람이 없다. 이 어려운 해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이다。그건 그렇고 이처럼 암담한 어둠 속에서도 때로 나는 터무니없는 공상가이며 안일한 향락가이며 염치 없는 욕심장이가 된다。나는 무엇일까? 한 마리의 뱀의 유혹에 이끌려 지혜의 열매를 따 먹은 애와, 호기심 많고 유혹에 약한 나의 본성은 기실 악인가 선인가。어쩌면 보다더 악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주위의 사람을 살핀다。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두려움으로 마음 쓰면서 그러나 한편 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나를 보아 주었으면 하고 원하고도 있다。이중의 얼굴을 가진 나는 무엇일까? 창 너머 바라보이는 남의 집 불빛은 유난히 크고 따스해 보이며 먼 곳의 불빛일수록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한다。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남의 것을 선망하는 나는 무엇일까?
같은 옷을 이틀 이상 입지 못하고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하기 싫어하며 같은 사람과 두 시간 이상 앉아 있기에 싫증 내는 나의 요사스런 변덕은 무엇일까? 모든 곳에 나의 사닥다리는 걸려 있으며 그 중 한 사닥다리를 나는 올라간다。그리고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 또다른 사닥다리를 선택할 수 없는 때의 늦음에 실망하고 슬퍼한다. 항상 그것의 되풀이다。
우둔한 실패와 후회를 거듭하는 나는 무엇일까?
한 손에 황금을 다른 손에 명성을 그리고 한 가슴에 사랑을 열어 탄탄한 대지에 두 발을 디디고 백 세까지 젊음을 누리기를 원하는 염치 없는 탐욕의 나는 무엇일까?
엎지른 물을 줏어담듯이 밖은 나에게 소리 없는 태형으로 채찍질하고 낮은 다시 갈피 없는 천의 얼굴로 나를 위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발돋움하며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여 탄식하는 환상의 악기, 창을 향해 서면 비상을 꿈꾸고 먼 기적 소리엔 번번히 출분을 생각하는 정신의 가출인。
때로 혼연히 독을 마시고 온 몸에 퍼지는 감미로운 독기에 스스로 눈 감는 위험한 유희에 황홀하고, 채워지지 않는 공복의 굶주림을 안고 가을의 마지막 시간까지 의기를 기다리며 섰는 사과나무의 고독한 대망도 내 안에 있다。기실 현실과 미래 속에 살면서 죽어 있고 또한 죽은 듯이 살아 있는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닌 모순과 배율의 혼돈, 바로 그것이다。
곧 나의 안은 온갖 惡의 동굴인 것을, 나는 그 악을 슬퍼하지도 않거니와 벗어버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나는 나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한다。마치 독버섯 속에 취해 있는 한 마리 개미처럼...모든 것이 가변적이며 배율적인 내 안에서 그러나 나를 지주하는 불변의 영원성을 나는또 발견한다。
『보라, 이 사람이 善惡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에덴동산 한복판 어디쯤엔가 있었을 지혜의 사과나무 열매를 따 먹은 인간은 천상의 낙원을 쫓겨났다고는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인간이 지은 최초의 작죄에 뜨거운 연민과 찬란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만일 지혜의 열매를 먹지 않았던들 인간은『완전하고 천진난만하고 어리석고 그래서 바보 같이 행복된 상태로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살았으리라. 지금도 그렇게 어리석게 살고 있으리라。욕망도 희망도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기쁨도 분명치 않은 인생 그것은 무서운 공허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지혜와 인식이 없는 세계에서 선과 악이 없는 세계에서 신에의 인지나 숙망인들 또한 있을 수 있을까. 진실로 낙원을 잃고 얻은 지혜와 인식은 우리의 양식이며 길잡이인 것이다。
보다 더 실낙원에 이르러 여인에게 주어진 형벌, 분만의 고통은 우리가 짊어질 영원한 책벌이긴 하지만 참으로 은혜롭고 감미로운 희열과도 같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머니이며 또한 어머니일 수 있다는 인식 하나로 나는 부릅뜬 눈과 돌 같이 굳은 주먹을 유순히 풀고 무한히 어진 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자신을 위해서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끊임없이 망설이는 방황도 어머니의 자리에 서면 결연한 빛으로 집중되고 응결되는 모성의 권위, 나는 내 안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경건하고 줄기차고 보람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여자이기 때문에 유독 행복했던 일도 또 유독 불행했던 일도 없었다。허나 어머니이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고 또 슬펐다。
나는 나무 중에도 꽃나무 꽃나무 중에도 열매를 익게 하는 과실나무다。나의 흔들리지 않는 목숨의 뿌리는 모성이며 바람 타는 가지와 잎은 연연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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