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몇몇 학생은 방학 때마다 갈 곳(친정)이 없어서 이 본당 저 본당 낯선 신부님들을 찾아가곤 했다。자기 주장대로 살 수 있는 형편도 안 되기에 자기를 죽이는 수덕(修德)의 부수입도 없지는 않았다。덕을 닦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때로는 부작용도 따랐다。제각기 방학을 마치고 귀교하면 할 이야기도 많은데 같은 처지(소위 이북 따라지)에 있는 도 군은 늘 지내고 온 본당신부님에 대해 불평이 많았다。물론 그 탓은 본당신부님에게 있다고 했다。같은 서러운(?) 처지에 있는 터였기에 말동무가 되어 함께 비판도 공박도 했다。
그러나 동정하는 마음도 그리 오래 가지 않게될 자각(自覺)이 곧 찾아왔다。본당신부님들이 한결같이 도 군에게는 다 못마땅하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을 공쳐먹는 데 이르렀다。동정이라는 마음의 베일을 서서히 벗겨보니 도 군의 신학생 생활이 사실은 성실하질 않았다。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급기야는 신학교를 그만두게까지 되었다。
사목생활을 하는 가운데 다른 이를 헐뜯으며 다니는 소위「교회를 아끼는 사람」을 보게 될 때 학생시절의 도 군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이에 대한 나쁜 평판을 선뜻 선의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친한 사이일수록 비판 없이 선뜻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기에 퍽 어려운 일이다。그럴 때 자칫하면 우정이나 동정은 부채질이 되어 신비체의 보이지 않는 암의 온상의 구실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 생활 원칙에 예외를 두게 됐다。좋은 평판의 말은 설령 거짓이라도 받아들이지만 나쁜 평판에 대해서는 일단 정지!-하여 제3자의 선의를 우선 존중해볼 심산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그처럼 원하시는 공동체 의식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또 이웃을 사랑하라는 지상(至上)명령을 효과 있게 실천하는 데 기초가 되는 크리스찬 생활의 지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재국ㆍ이상열ㆍ이준영ㆍ현석호 제씨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김병일ㆍ나상조ㆍ김명근ㆍ박춘식 네 분 신부님께서 각각 네 차례씩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