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오후 2시.
찌는 듯이 무더운 열기가 감싸고 있는 잠실벌의 서울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더위도 아랑곳없이 신바람 나는 잔치가 벌어졌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가 벌인 한마음 한몸 운동 헌혈 잔치였다.
관중석은 2만여 명의 교우들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으며 경기장 한가운데 마려된 조그만 무대를 중심으로 배치된 2백 개의 하얀 헌혈침대 위에는 헌혈하는 교우들로 빈 침대가 없었으며 침대의 주위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헌혈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헌혈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교우들의 한 마당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내어 놓음으로써 한 형제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이날 강우일 주교님께서는 강론에서 형제를 위해 자신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을 나눔으로써 이 땅에 근원적인 화합의 기운을 무르익게 하는 화합의 실천운동에 모두가 나서줄 것을 호소하였다.
얼마전 각종 신문에 인조혈액이 완성된 것과 같은 보도들일 여러 번 있었다. 한국의 모 연구기관에서도 인공혈액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과학문명도 아직은 우리들을 몸속에서 흐르고 있는 한 방울의 혈액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혈액은 세포성분인 적혈구ㆍ백혈구ㆍ혈소판과 액체성분인 혈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몸속에서 혈액이 담당하는 일들은 정확히 모두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현재 알려져 있는 것만 하여도 산소를 공급하는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일、 영양물질과 배분비 물질들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운반하는 일、 신장이나 피부를 통하여 노폐물들을 배설하는 일、 체온을 조절하는 일、 면역체의 형성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이번엔 만들었다고 보도된 인조혈액은 많은 혈액이 하는 일 가운데 산소를 공급하는 일 한 가지를 해결하였다는 것이다.
정말 위대한 발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제품이 혈액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환자가 수혈을 받는다는 것은 모자라는 혈액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이다.
혈소판이 모자라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출혈이 있는 환자에게는 혈소판의 수혈이 필요할 것이며、 백혈구가 모자라는 백혈병 환자에게 심한 간염의 증상이 있으면 백혈구를 수혈하여야 할 것이다. 빈혈이 심한 환자에게는 적혈구의 수혈이 필요할 것이며、 혈우병 환자인 경우에는 항 혈우병인자의 수혈이 필요할 것이다. 심한 외상으로 갑자기 많은 출혈이 있는 환자에게는 혈액의 각 성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전혈의 수혈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게 사용되는 혈액은 건강한 헌혈자들로부터 공급받지 못하면 병상의 환자들에게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1974년 이전、 그러니까 대한적십자사가 국제적십자의 권유로 헌혈운동을 전개하기 전까지는 우리들의 병원에서 사용됐던 모든 혈액은 돈을 받고 혈액을 파는 사람들로부터 사들였던 매혈 혈액이었다. 혈액은 우리 신체의 일부이다.
혈액은 포도당 주사액이나 다른 주사제들과는 다른 생명을 가진 생명체다. 이러한 생명체를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은 인도적인 면에서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천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혈액 생명체가 상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혈액이 사용되는 곳은 크게 나누면 두 곳이다.
하나는 각 병원에서 사용되는 혈액들이고 다른 하나는 혈액을 처리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귀한 약제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전자에 사용되는 혈액은 거의 전부 헌혈된 혈액으로 충족되고 있으나 후자인 경우는 거의 전부가 매혈자들로부터 확보하고 있으며 이것도 모자라 일부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혈된 혈액과 헌혈된 혈액의 양은 각각 50%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진국들의 헌혈률은 인구의 6% 이상이며、 특히 일본과 스위스의 경우는 8%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5%선에만 올라가도 매혈이 없는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한마음 한몸 운동에서 전개하고 있는 헌혈운동은 생명체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인간회복의 운동일 것이다. 건강한 사람인 경우 두 달에 한번정도 3백20cc의 혈액은 남을 위하여 내놓아도 좋을 여분의 혈액인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헌혈은 또한 벗을 위하여 자기목숨을 바치신 주님의 그 사랑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생명과도 같은 피를 바치기 때문입니다』
박영
(예로니모·의학박사)
◇38년 9월 출생
◇63년 부산의대 졸업
◇75년 부산대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취득
◇현 대한적십자사 혈액제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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