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두 달에 한 번씩 갖는「가톨릭 문화강좌」시간에 원로 시인 구상 선생님을 모시는 영광을 누렸다. 해박한 지식、 철순 노인의 젊은 감성、 태산 같은 여유、 잔잔한 미소…. 마냥 즐거운 하루였다. 또 신부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그분의 공손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초라한 내 모습을 다시 본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성직자인 것은 나의 직업이 신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성직자다운 사람이기 때문인가?』단지 직업이 신부이기에 성직자라고 생각하면 온몸에 맥이 탁 풀린다. 신부-이는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편으로써의 신부-이는 빌어먹을지언정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 자신 거룩하지는 못할 지라도 거룩한 것을 팔아서까지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는 않다.
또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굴지 않아도 남들 사는 만큼은 살 자신도 있다. 그러면 성직자다운 사람이기에 성직자 인가? 이 또한 목도 손도 힘차게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성직자이기엔 너무도 추하고 못난 나의 모습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왜 내가 성직자인가?
그래 이 점이 문제다. 성직자 같지도 않은 것이 성직자이어야만 하는 이것이 문제다. 이점이 언제나 날 고통스럽게 한다.
성직을 그만 둘까? 그러나 이 또한 아무도 원치 않는 일임은 틀림없다. 하느님도 교회도 나를 잘 알고 있는 천진한 교우들도、 또한 내 자신도 원치 않는다. 성직자 같지도 않은「나」인줄을 잘 알면서도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심지어 혹시라도 이 성직을 떠날까 걱정하고 염려해 준다.
왜 그럴까? 이유는 오직 하나 하느님의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모나고 못된 녀석일지라도 자기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만을 하는 그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즉 성직자 같지도 않은 재가 성직자 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을 쓰고 하느님을 위한 행위를 하기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그것뿐인 것. 이 말과 행동과 글에 구상 시인과 같은 팔순노인의 지혜와 여유와 온유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이련만 아직은 꿈같은 얘기다. 그동안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읽어주신 교우님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그러저러한 글 밖에는 쓸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드린 아픔과 상처에 용서 청한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전주교구 홍보국장 권이복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 서울 도봉동본당 장명희 수녀님(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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