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회관 계단을 오르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매일 계단과 화장실 등 회관의 가장 더럽혀지는 곳을 청소하시는 수녀님들이 계시다. 이 날은 낯이 설은 연세가 들어보이는 외국 수녀님이었다. 보니 그 수도회의 全 책임자이신 프랑스인 원장수녀님이었다. 놀랍고 반가워서『원장수녀님이 직접 이런 일까지?』하고 인사에 대신하는 말을 했었다. 원장수녀님은 반가움과 자비에 찬 눈초리로 웃으시며『안녕하십니까? 왜 안 되나요?』하고 당연한 내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자세였다. 수없이 시끄럽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학생들에게 길을 일일히 비켜 주며 묵묵히 일에 열중이시다. 수도원 시찰차 오시었다가 이날에는 일할 분이 없어서 대신 오신 것이다.
이 희생과 봉사의 지도자에게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졌다. 거기에는 아무 허식도 거짓도 없었다. 체면을 따지지 않는 봉사가 있을 따름이요. 사랑에 부친 권위의 위력이 있을 뿐이었다. 현대는 체면을 유지하려는 허식을 답습하고 권력과 권위에 취해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위장을 찔러버리려는 시대이다. 적나라한 인간상을 보자는 욕구에서 온 것이다. 그다지도 허식과 거짓과 비인간적인 물질과 권력에 더럽혀진 시대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적 충족이 없는 벗겨진 인간은 추악하기만 하다. 진실을 찾아 벗기는 인간에서 신을 잃은 비참과 영원을 잃은 불안과 진실과 성실을 잃은 인간 이하의 비극이 보일 뿐이다. 나는 이 신앙의 힘으로 신 앞에 모든 것을 던진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과 봉사의 증인 앞에서 생명을 들은 것 같다.
전달 방법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 인간은 말이 아니다. 증인을 찾고 있다. 진리의 증인, 사랑의 증인, 봉사의 증인, 구원의 증인, 삶의 증인을 찾고 있다. 나는 이 수녀님에게서 이 모든 증인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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