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가정란을 오래 한 덕분에 몇몇「디자이너」와는 지교로 가까이 지내게 되고 가끔 틈이 나면 그 양장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내가 양장점을 비교적 자주 찾고, 갈 때마다 두어 시간은 눌러앉아 있게 된 데는 지교를 보고 담소를 즐기는 이상의 나대로의 흥미거리를 발견한 때문이다.
내 지교의 양장점은 하나같이 시내 번화가에 있고 주로「하이 팻션」을 취급하는 일류 양장점이다.
그래서 이 고급 양장점을 찾는 계층 또한 고급이요 나와는 별세계의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이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양장점 고객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이건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옛 고객이 흩어지고 새로운 부층의 부인네들이 갑자기 고급화되던 시대에 당황한 어느「디자이너」의 귓속말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새로운 권력층이나 부층이 형성되면 그 그늘은 곧 고급 양장점을 덮는가 싶다.
없던 사람들 손에 갑자기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 그들은 우선 차를 몰고 시장에서 암거래 되는 고급 양장지를 모두 걷어들이듯 해서 고급 양장점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급화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 이들은 대체로 <양장에 무식하여>「디자이너」는 비위를 맞추기에 진땀을 빼다 못해 당황한다. 그러나 비싼 고객이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양정점에 나타나선 진을 치는 이들은 올 때마다 두서너 벌의 옷을 가봉한다.
가봉한 것이 완성되면 찾아갈 때 반드시 새 감을 자르게 해서 다음 가봉 날짜를 정해서 옷을 연속적으로 맞추는 풍성함을 즐기는 것이다. 패거리로 몰려오면 이들은 입조심 없이 함부로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한다.
『아유, 어제는 사우나 독크에서 진종일 있었더니 좋더라 맛사지도 하고 쥬스 등도 마음껏 마셨는데 7천 원밖에 안 들던데…』
『이번에 애기 아빠가 가져온 거야. 악어 가죽 빽과 구두인데 아무래도 구두가 잘 닳을 것 같애서 같은 걸로 하나 더 사오랬다』
도무지 별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는 저 사람들과 동일국적이란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저 여자들이 도대체 누구들이야?』
『이름을 대면 모두 알 만한 집 부인들이지.
어디서 돈이 저렇듯 샘솟는지 보노라면 겁이 나요. 돈은 또 형편 없이 쓰거든. 또 문제가 있어요. 돈 있는 여편네들이 도무지 집안에 붙어 있지 않아요』
아침 9시 이후 전화 연락이 가능한 부인은 고객의 10%도 될까말까 하단다.
대부분이 미장원, 사우나, 독크, 양장점, 쇼핑이런 양성적인 소비 행각에 나서고 또 적지 않은 수가 윤리적인 타락을 예시하는 음성적인 어떤 탈선에 젖어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야단났다는 평이다. 세태다 바뀌는 대로 이런 부인층은 얼굴이 바뀌고 몸짓도 달라진다. 습성도 취미도 달라지고 있어서 이들을 가까이서 관찰하노라면 나는 나대로 무언가 세태의 변화를 실감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옷자랑, 돈자랑, 집자랑 자가용 자랑 등으로 소일 하는 이런 고등 부인네들의 가정은 어떤 상태에 있고 남편은 또한 무엇으로 돈을 벌어들여서 부인으로 하여금 저토록 뿌리게 할까? 알뜰히 번 돈을 저렇게 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월급쟁이의 경우 월급은 아까워서 함부로 못 쓴다는 말들을 한다. 하다못해 원고료라도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 그 돈으로 동료들 점심도 사고 차도 살 배포가 생기는 법이다. 부자라고 다르랴. 아버지가 번 돈은 아들이 쓰게 마련이라고, 애써 번 아버지는 그 돈을 제 자리에서 낭비를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빈부의 격차를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이 부인네들 뒤에 부정부패는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마치 허영 덩어리 같은 이 여인들이 바로 사회 윤리의 타락을 촉진하는 한 마리의 미꾸라지 역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인구의 태반을 차지하는 여성 중 이런 부류가 몇 프로나 될까. 수적으로 형편 없이 낮은 퍼센테이지에 있다 하더라도 한 마리의 미꾸라지는 온 강물을 흐트려놓을 수 있는 만큼 이 한 마리의 행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자격이야 있건 없건 상층사회로 흘러간 행운아들이 하나같이 미꾸라지가 될까봐 두렵다. 그 중에는 뜻 있는 이도 없지 않아서 봉사활동 구호사업에 뜻을 두는 부인도 더러 있다. 자기의 시간과 재력을 활용함으로써 그들의 혜택을 일부에게 나누어 주려고 애쓴다. 자기 자신의 만족 외에 사회 전체의 만족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적은 일부 자각된 여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운동일 뿐이다.
이 운동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많은 상층사회 여성들에게도 퍼져서 그들로 하여금 여유를 양장점이나 미장원, 골프장에서만 소비하지 말고 그 여유의 반쯤은 사회 공동 관심사에 쏟아 주게 한다면 사회 윤리는 건전한 곳으로 이끌어질 것이다.
이들이 개인 만족에 집착하는 한 외래품 단속은 공염불이 되고 사회 개선의 꿈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변할 것 같지 않은 양장점 고객의 서슬을 바라보면서 사회 개선에 관한 여성의 책임 같은 것을 생각해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