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일까 아니면 극도의 단순일까? 늘어나는 자살자 수는 오늘날 커다란 문제를 제기한다. 삶이 그토록 헐해졌단 말인가. 혹은 그토록 비싸졌단 말인가? 철학이 풍부해선가 아니면 너무 빈곤해선가? 한 인간을 자살로 유인하는 외적 배경 및 심리적 동기는 보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과연 그 예방책은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무엇일까?「예방센타」실무 담당자는 가톨릭병원협회「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편집자>
한 인간이 스스로가 택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 생명에 종지부를 찍는 행위를 우리는 보통 자살이라 말한다. 좀 더 자세히 풀이하면 그가 택한 방법의 결과가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한 채 그런 행위를 자아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사실상 우리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고 또한 오늘날 현재 이 순간에도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군데군데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살에 관한 통계는 주로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사회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고 또 WHO(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총괄 발표되고 있는데 최신 집계에 의하면 그 추세는 한 국가의 문화 배경, 지리적 조건 및 종교적 배경 그리고 정치 형태 등에 따라 심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후가 따뜻하고 종교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이태리나 스페인 등은 가장 낮은 편이어서 매해 인구 10만에 대해 겨우 2~5명밖에 안 되나 북구라파의 신교 국가들에서는 무려 25~30명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가 하면 체코, 유고슬라비아 같은 동구 공산국가에서는 30~40명 꼴이 된다. 또한 공산권에 의해 포위된 채 고립되어 있는 서베르린도 30명이나 된다 한다.
우리 인간의 자살에 대한 마음가짐 또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라져 가고 있다. 즉 서양 사회에 있어서는 중세기 때만 하더라도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자살 곧 죄악의 사상이 압도적이었으나 이른바 문예 부흥을 거쳐 데칼트의 이원철학의 산출을 본 서양 사회에서는 삶과 죽음을 대조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사상이 대두되었고 이 사상은 드디어 18세기 불란서의 소위 계몽주의 사상의 보급으로 더욱 더 사변적인 색채와 함께 철학적 모색을 시도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불란서의 튤켐 갑은 사회학자는 자살의 동기를 ①이기적 ②이타적 ③무형적인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데 이르렀던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 동양에서 일어났던 임금님을 위한 신하들의 희생적 자살이나「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의 투신자살 등은 모두 이타적 자살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살의 동기나 발생 빈도를 에워싼 경우 자살자나 자살 기도자의 수가 꽤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에 반하여 이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정부의 대책이나 우리 의료계에 있어서의 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황이 이러한 데 비하여 지금 WHO는 예방정신의학적 견지에서 마약문제, 청소년 비행문제와 함께 이 자살 예방에 관한 문제를 삼대 과제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WHO의 적극 후원 아래「국제자살예방협회」가 이미 1959년도에 창립을 보았고 2년마다 국제 학술대회를 가짐으로써 상호 간의 자살 예방 의견을 나누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 회의는 1971년 10월「멕시코」시에서 개최되는바 의사 아닌 누구라도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 가톨릭 중앙의료원의「자살 예방센타」에 대해 과거의 일들을 더듬어 가면서 설치 목적의 타당성과 업적 및 장래 계획 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또한 가톨릭시즘에 입학한 병원을 운영함에 있어 이 기구가 어떤 문제점을 주는가를 모색해 보기로 한다.
1963년부터 조직적으로 활약해온 자살 예방센타는 7백 내지 1천 명 가량의 음독 자살 기도자를 취급해 왔다. 그러는 동안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대략 아래와 같은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그들의 대부분은 19대나 20대로서 가정적으로는 불행을 경험한 젊은이들이다. 둘째로 그들은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따위의 사고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동등하고도 상대적인 것으로 단순히 생각하는 젊은이들이다. 한마디로 철학이 빈곤한 사람들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들에 대한 심리적 종교적 지도는 가톨릭병원 설립 목적 그 자체와 일치점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가톨릭병원이 한 지역에 대해 봉사할 수 있는 임무를 가장 손쉽게 또한 가장 보람있게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많은 가톨릭병원에서 이런 기구를 설치하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의 적극 참여가 이룩됨으로써 박애정신이 보다 뚜렷하게 이 나라 사회에 반영돼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자세를 버리고 무엇보다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참여 및 봉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로잡고 있는 죽음과 대결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가톨릭병원 역시 아픈 사람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까지 적극 봉사할 수 있는 병원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자예방센타의 보다 많은 설치는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살 예방의 일환으로서의 의의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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