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간만에 S 신부를 만나게 되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최근에 캄보디아에서 자기와 같은 빠리외방전교회 신부가 두 분이나 순교(殉敎)했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S 신부는 한국에 온 지 35년이나 되는 프랑스인 노인 신부입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프랑스를 떠나온 사람처럼 자기 본국과 한국에 대한 감각이 신선했으며 한국 천주교회가 수만 명의 치명자를 내던 순교자들의 정신을 현대에 이어받는 씩씩한 모습과 역사적 현실에 대한 살아 있는 생생한 증거자(證據者) 같은 신앙정신을 대했을 때 마치 거목(巨木) 앞에서 있는 듯한 흐뭇하고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거목(巨木)의 싱싱함, 이것은 우리들의 하나의 이상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뿐 아니라 완전히「프랑스」인이면서 완전히 한국인이 된 노신부(老神父), 이것은 바로 요즘 입버릇처럼 나도는 토착화(土着化)라는 것의 참된 본보기가 아닌가 했습니다. 잠시 시찰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空港)에 내릴 때는 이미 한국말을 반 이상 잊은 듯한 때도, 또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이 제법 한국의 때가 구질구질 묻어서 마치 자기 본국과 타국의 단점만을 골라서 몸에 지닌 듯한 모습은 결코 토착화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S 신부의 캄보디아의 불교에 대한 얘기도 그저 얘기라기보다도 그 속에는 하나의 확신 같은 것이 엿보였습니다. 동양에 있어서 불교라는 것은 마치 이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성당에서 촛불을 끌 때 쓰는 장대를 그려 보였습니다.
불교는 촛불을 끄듯이 인간이 가진 자연적인 좋은 본능(本能)을 말살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동양이 현대에 있어서 후진(後進)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불교의 영향이라고 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이 불교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전교가 전연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가톨릭은 현재 월남(越南)에서 이주해 온 월남인들의 가톨릭이라고 하며 이번 싸움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치명했다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 가지 처음 듣는 얘기로는 캄보디아에서는 전 국민이 일 년간씩 머리를 깎고 절에 가서 불교 수도를 해야하며 이 의무는 병역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캄보디아 사람들은 현실 참여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에 휘둘리는 것도 그다지 관심거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확실히 위대한 종교입니다. 무엇으로 보나 종교로서의 체제와 원리(原理)를 충분히 갖춘 교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대립적인 교리를 가진 전통적인 종교는 이것 하나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차 신앙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독단에 빠져서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대방의 근본 원리를 잘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의 근본 원리를 더욱 깊이 아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람(아가페)과 불교의 자비(慈悲)는 대단히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별하게 되면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한 이론(베오리아)입니다. 그저 막연히 감정 혹은 의욕에 이끌려 신앙을 고집하다가는 프로이드 일파의 정신분석 학자에게 송두리째 신앙을 넘겨 주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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