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닐 적에 방학숙제를 할 때면 으레 못해가는 숙제가 있었다. 습자(붓글씨)와 글짓기였다.
그런 내력을 가진 나에게 이상한(?) 인연으로 이「일요한담」의 원고 청탁이 주어지다니…. 부끄럽고 망설여지지만 주위환경에 순명해야하는 것이 수녀라기에….
본당 구유를 꾸미면서 지난 일이 생각난다.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에 원주교구에 있는 작은 면 소재지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영춘(永春)이라고 하는 그곳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여있고 한 면은 소백산이 있는 육지속의 섬이었다. 그곳에는 개신교회가 두 곳、 천주교 공소가 하나 있었다.
산간벽지 가난한 이 공소에 성탄절이 다가오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마음이 들뜨고 무엇이라도 성탄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도 개신교회 두 곳에는 목사님이 계시니까 교회 밖으로 번쩍번쩍하는 전기불도 달아놓고 매년 쓰는 것이지만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우리 공소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그때 아이들이『선생님! 우리교회도 무얼 좀 해요』하고 졸라댔다. 『무엇을 하면 좋겠니?』하고 물으니『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개신교 보다 더 크게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해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니아판 두 개를 합쳐서 크게 할아버지를 만들고 솜으로 수염을 멋있게 만들어 붙여 아이들 소원대로 개신교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 보다 더 크게 되었다.
그리고 연극무대도 멋있게 꾸며서 성탄절을 화려하게(?) 지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지금은 나무로 잘 조각 되어진 구유세트를 놓고 어떻게 하면 가난한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묘사 할 수 있을까 하고 고급스런 고민을 하고 있다.
성탄이나 연말연시를 맞아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가난한 시골 공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때의 때 묻지 않은 열성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던 그 시절이 나에게는 가장 큰 은총의 시기였다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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