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이었고 우리 민족의 수치였던 6. 25 사변이 일어난 지도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20년이면 세대가 바뀐다고 한다. 지금 나이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공산주의 침략이 어떠한 것인지 직접 체험하지는 못하였을망정 잦은 북괴의 간첩 파견과 비행기와 방송선 남북과 세균전 등의 만행을 봐 왔으니 모두가 공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쯤은 충분히 알 수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인 우리는 억압된 북한 동포들의 해방이 하루 빨리 이뤄지도록 부지런히 기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 신자는 6.25 사변이 한국 가톨릭교회에 준 의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1953년도(판문점에서 휴전이 체결되던 해)의 교세는 불과 16만6천4백71명이었고 1960년도에는 45만1천8백8명이 였으며 1970년도에는 80만에 육박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난 20년 간의 교세 확장은 한국에 가톨릭이 진출한 이후 백80년 간의 그것보다 5배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20년 동안에 우리의 손에 의해 세워진 성당, 학교, 병원, 기타 사회사업의 수도 교세 확장의 비례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쨌든 한국 교회의 획기적인 발전은 6.25 사변 이후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성싶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을 우연의 결과로 미루지는 못할 것이다.
6.25 사변은 우리 민족이 공산주의와 직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우리가 절실히 느낀 것은 공산주의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무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상적 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불교와 유교의 전통으로서는 새로운 과학적인 사조를 이겨낼 수 없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정신적 공허를 메꾸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확고한 사상의 안식처를 찾아서 두드리는 곳이 바로 가톨릭교회였던 것이다. 많은 지성인들의 개종의 동기는 여기에서도 일부 찾을 수 있다.
둘째로 6.25는 UN군을 우리나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명을 걸어놓고 참전하였다. 외국과 별로 교제가 없던 우리 민족이었으니 만큼 그들의 깊은 진의를 이해하진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감사의 정만은 다소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외국군들을 기독교인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다 미국의 대한 구호 물자도 교회를 통해 배달되지 않았던가?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이른바「밀가루 신자」들이 나타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원인들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포교 성적이 좋은 나라로 꼽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비록 교세는 확장되었지만 내적인 충실과 사상적인 무장은 우리에게 아직도 중대 과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분석이 올바른 것이라면 가톨릭교회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빈곤을 메워 줄 힘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의와 사랑 평화와 자유, 이 모든 것은 정신의 산물이지 경제 향상의 결과는 절대로 아니지 않는가. 아직도 이름만 가톨릭이지 자본을 우상시하고 권력의 노예로 있는 정신 박약자로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모두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 바로 크리스찬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중심으로 교회를 이용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자세는 정신 향상에 추호의 도움도 되지 못함을 알아야겠다.
6.25의 역사가 교회를 발전시켰으면 교회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부정부패 또한 근절되지 않으며 가짜가 성행하고 불행이 연속하고 있으니 어인 일일까. 차제에 우리는 참으로 새롭게 각성해 봐야겠다. 비록 80만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우리 각자가 자각해서 남을 위해 봉사하고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정신으로 살아만 간다면 적어도 조석간의 사회면은 그 면모를 달리할 것이 아닌가.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사회에서 성행하는 악들이 교회 내부에서까지 독소를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약 물욕이나 권세욕이나 명예욕이나 이기심에 조금이라도 사로잡혀 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정신과 십자가의 희생을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다른 누가 그 정신을 계승해 줄 것인가. 항상『깨어 있으라』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곰곰이 익혀 들어야 할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 한국의 장래는 우리들의 교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톨릭정신이 올바르게 수립되는 것이 구국사업이라는 것을 다같이 명심하며 자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정말 통일만 되는 날이면 어느 나라보다 못지 않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 통일의 념원을 굳게 하고 공산주의하의 통일이 아닌 자유주의로서의 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바래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바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가 돼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구하라 곧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곧 열어 줄 것이다』하시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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