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은「세계 상이군인의 날」이었다. 6·25도 어언 20주를 맞은 지금 상이용사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여러 면에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부는 정부로서 일반 사회는 사회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들에게 관심을 쏟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 것인가?▲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너무도 귀찮아 했다고만 생각된다.「상이군인」하면 우선 행패나 부리고 따질 수도 없는 처치곤란 의무라는 느낌만을 거의 고정관념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부린 행패를 보도하는 신문은 있어도 그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 줬다는 기사는 도무지 만나지지 않는다. 마치 자기 탓으로 스스로의 몸뚱이를 짓뭉개 먹어버린 괴물이나 보듯 짐짓 불결해하고 낯살을 찌푸린다. 때문에 소외와 망각의 침통한 늪지에 쫓겨난 그들은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흥건조차 못 누리는 형편에 있는 것이다. ▲물질적인 도움도 물론 중요하겠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심정적인「어프로칙」가 아닐까. 조금만 이해해 주고 조금만 존중해 줘도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화안해지던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토록 외로운 것이다. 배고픔은 서글픔으로 오지만, 인간에의 목마름은 사무치도록 아픈 외로움으로 온다. 죽음처럼 싸늘한 폐허의 적막이 된다. ▲진실로 우리가 이해할 것은 바로그「외로움」이리라. 불구자는 누구나 불구된 자리만큼의 고독을 지닌다. 절름발이는 절름발이의 고독이 있고 앉은뱅이는 앉은뱅이만의 쓸쓸함이 있다. 성불구가 된 자는 보다 심각한, 절망적인 허함을 씹으며 산다. 처음에는 고함을 지르며 억울해하다가 시일이 감에 따라 겉보기는 평온을 회복한다.
그러나 고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존재 내부로 뻗어가는 검푸른 멍으로 남는다. 무엇으로도 지울 길 없는 절대한 하나의 상흔이 된다.
안으로 안으로 뭉쳐지는 피멍을 어떤 이는 그것을 도통과 각으로 정복해 가지만 대부분은 건드리기 무섭게 전신을 부르르 떠는 불신과 피해망상으로 스스로를 좀먹어 가는 것이다. ▲또 한 번 지치도록 전쟁을 증오하면서 진정으로 부드럽게 그들을 어루만져 주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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