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가톨릭시보 4면에「헌금」에 관한 자세한 얘기가 독실한 신앙고백을 겸해서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대단히 좋은 의견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몇 가지 있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까 합니다. 더구나 그 의견은 어느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가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대직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며 종교계의 일반적인 이러한 통념으로 인해서 참으로 억울한 처지에 있는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거지도 안 받는 10원짜리를 하물며 천주께 바치느냐!』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같이 통용되고 있는 말이지만 독선자의 공갈ㆍ협박입니다. 교회가 금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더구나 현대에 있어서!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천주께서는 거지보다도 더 가난하시다』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도리를 무시한다면 여러분들은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을 떠나서 보더라도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 10원짜리를 이렇게 경멸할 단계는 못 되었다고 봅니다. 아침이면 10짜리 몇 푼 때문에 발을 굴러야 하는 부모와 등교길에 눈물을 짜야 하는 동심이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가정의 부엌은「주부의 연옥」입니다. 부엌을 악단처럼 꾸며 놓은 주부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엌을 떠나 있습니다.
그런 주부들의 핸드백 속에는 냄새 나고 더러운 10원짜리는 들어 있지 않으며 더구나 걸레감이 된 1원짜리 같은 것은 찾아보는 것조차 모욕적인 처사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미사 때 더러운 벌레처럼 핀셋트로 집어들며『이거 천주께 바치라고 엄마가 주더냐?』고 물었을 때 어쩌면 살아 있는 무명용사(서품되지 않은 무수한 숨은 성인들)를 꾸짖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 정재라는 것은 드물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현대는 그러합니다. 다소간에 우리는 공범자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도의문제인 감투와 권력에 아부해서는 못 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못 쓴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핀셋트를 집어들어 보여야 할 것은 겉보기는 깨끗해 보이는 수표나 큼직한 명함이라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울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백명의 범법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무죄한 자가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정신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단 한 사람의 가난한 영혼을 위해서 99명의 인색한 인간들을 꾸짖는 것을 보류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리의 길을 잃은 양을 위해서 99마리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착한 목자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일날 내는 돈은 천주께 바치는「예물」이요「제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나머지 천주의 제대 앞에 또 하나의 제상을 차려 가지고 나와서 10원짜리 한 장으로 장만할 수 있는 제물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배 하나를 여덟 조각으로 갈라 보여 준 일이 있다면 이 광경을 눈 앞에 보고 말 한마디 못하는 교우들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모처럼 성당 문을 두드린 위리에 굶주린 영혼이 거리에 동석했다면 돌아서서 얼마나 조소했을 것이며 바로 이 제사 때문에 천주학쟁이로 몰려 치명한 용사들이 불과 백여년 전에 수없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말문이 막히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 세간에는 양주를 놓고 지내는 불설한 제사가 얼마나 있는지 본 일이 없지만 가난해서 청수를 떠놓고 지내는 깨끗한 제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보다도 걱정되는 것은「미사성제」의 근본적인 뜻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사의 핵심 부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구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공번된 주의 교회를 위하여 이 제물을 봉헌하오니…』
『그러므로 주여 비오니, 우리 봉사자들과 주의 온 가족들이 드리는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시고…』『…깨끗한 제물, 거룩한 제물, 티없는 제물…인자하시고 어지신 얼굴로 이 제물을 굽어보소서…』
여기에「제물」이라는 말이 여러 번 되풀이되는데 이 뜻이 점점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치명적들은 이 뜻을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밤ㆍ대추ㆍ곶감을 물리치고 치명을 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주의「말씀」과「빵」을 동격화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도 돌보지만 령혼이 우위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동등시하는 것은 현대의 커다란 오류입니다. 10원짜리「제물」을 크게 책망하다 보면 참으로「거룩한 제물」이 차지할 자리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 교리가 변질되면 황금으로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해도 천주의 나라를 위한 일이 못 될 것입니다. 천주께 바치는「예물」에 대해서 인간이 옆에서 지나치게 간섭하면「가난한 마음」이 갈 곳이 없어지니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