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터잡아 인류에게 그 복음을 가르치고 성사를 집행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르치는 사명은 현대와 같이 전통이 무너지고 생활 수단이 급격하게 바뀌고 인간이 소외되어 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성직자와 평신자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사명의 하나이다. 교회는 인류의 스승이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와 그 대리자인 지상교회의 교황을 비롯한 모든 주교와 또 그 대리자인 모든 사제와 그외의 모든 성직자와 평신자가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바라는 지상의 복음화는 먼저 그 스승의 자질과 성의와 모범된 행동에 매여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번 대구 가톨릭의사회에서 발표한 가족계획 실태조사의 보고에 의하면 스승인 교회에 큰 이변이 생긴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지난해 8월 경북 도내 1개 군 1천5백53명의 가임부(可姙婦)를 대상으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실시한 가족계획 실태조사의 결과 보고 가운데서 드러난 놀라운 현상이다. 20세에서 40세의 가임부를 무작위 추출법(無作爲抽出法)에 의해 조사하고 또 그 중에서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를 구별해서 그 조사 결과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17%가 인공유산의 경험이 있고 그 중에서 조사된 53명의 신자를 따로 집계하니 3%가 더 많은 20%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사 결과의 정확성에 관해서는 따져 봐야 할 것이 있다. 또한 비록 그 통계가 높은 확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한국 신자 전체에게 해당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53명이라는 적잖은 신자 가임부 중에서 그 40%가 이미 인공피임의 경험을 가졌고 조사 당시에 인공피임을 하고 있는 자가 13%이고 앞으로 인공피임을 희망하는 자가 56%라는 통계와 함께 생각할 때에 함부로 넘길 수 없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의 피임법은 주로 물리 화학적 방법이며 주기법에 의한 피임은 실패가 많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묵인하는 피임법은 이른바 주기법뿐이다. 그 외의 모든 물리적 인공피임은 일부 신학자를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방법도 없지는 아니 하나 교회는 이를 죄악으로 판단하여 금하여 왔다. 따라서 교황은 이미 여러 차례의 회칙과 담화를 통하여 낙태와 인공피임을 단죄하여 왔고 또 우리나라 종교인 협회도 현안의 모자보건법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교회의 가르침이 비신자 사회에는 물론 신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조사에서 판명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규명하여야 하고 내일의 교회를 위한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제2차「바띠칸」공의회 이래 현대 교회의 새로운 양상으로서 크게 드러난 것이 교회의 현대 적응이다. 이 과제를 둘러싸고 신학자나 전례학자 사이에 많은 연구와 토론이 거듭되었다. 그 모든 논의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현대인의 생활 속에 깊숙히 파고들어 그 복음을 생활화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비신자에게는 물론 신자들에게도 잘못 이해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교회의 현대 적응을 현실 적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다. 그 현실 적응이 가족계획 문제에 미쳤을 때 인공피임의 자기 합리화에까지 몰고 간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현대 적응은 교의(敎義) 의 현실화가 아니고 그 풀이와 복음화의 방법론의 현실화라는 데 재삼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 쇄신의 도정에서 당황하는 경향은 비단 일부 평신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성직자 가운데도 스승으로서의 지도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자가 없지 않은 것 같다. 근간에 여러 번 바뀌는 전례와 경본과 기도문을 익히는 데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겠으나 그로 인해 스승의 임무를 잠시라도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 현대 교회가 부르짖는 교회 쇄신은 먼저 성직자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그 가르침을 받아 모든 평신자 속에서 또한 이뤄져야 하고 나아가서 비신자 사회가 이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피부로 실감케 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신자 가정에 인공피임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고장에서는 교회가 아직 스승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가 될 것이다.
현대 교회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그릇되게 이해되었거나 아니면 문란해진 현대 조류에 휩쓸리는 대로 방치해둔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우리 교회는 그 모든 책임을 크게 느껴야 하고 성직자나 평신자나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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