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자 가톨릭시보 3면에「종교사회 조사에 큰 차질」이란 제목의 톱기사 내용을 금할 수 없었다. 작년부터 주교단에서는 변천하는 사회 안에서 가톨릭의 모습을 찾아 사목 계획에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650만 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여 서강대학 사회문제연구소 전문가들의 힘을 빌어 시행한 것인데, 기초 자료를 모으기 위한 설문서를 전국 본당에 요청하였던 바, 3개월이 지나도 35%나 전혀 응답이 없다는 것이며 교통이 불편한 도서 지방 또는 농촌의 본당들은 회답률이 높고 성실한 데 반하여 대도시에 있는 본당들의 회답률은 극히 저조하다고 보도되었다.
이 기사를 읽고 월여 전에 한국의 대표적 본당인 명동에서 4,800명에게 설문서를 낸 결과 응답이 불과 30% 미만인 1,300명에 불과하였다는 보도와 아울러 한마디로 오늘의 가톨릭의 치부를 단적으로 노정시킨 것으로 보아 앞으로의 사목 계획도 주먹구구식의 연장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아닐할 수 없다. 언필칭 오늘날 사회상의 타락을 개탄하는 지사들이 팽배하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사회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국면에 처해서는 사회 정의가 항시 공전되고 있는 것을 너무도 많이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언젠가 한 고위 성직자가 사회 안의 교회를 역설하시는 강론을 경청하였다. 그분께서는 오늘의 혼독한 사회의 구원을 위해 이 사회가 마지막으로 기대를 거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갈파하시었다.
지당한 말씀이라고 공감한다. 그러나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같은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제의하시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사회의 얼굴을 새롭게 하기에 앞서 먼저 교회의 얼굴이 새로워져야겠다는 것이고 둘째로 교회의 얼굴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교회는 교주와 신부와 수도자와 평신도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치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면서도 몹시 강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 교회는「하이어랄키」는 살이 있어도「커뮤니티」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증좌이다. 다시 말해서 권위의식은 있으나 공동체의의 이 없다는 것이다.「하이어랄키」와「커니뮤티」는 함께 교회의 생명이 아니겠는가? 비옥한 토양에서 풍요한 결실을 얻듯이 사랑의 계명에 뿌리 박은 공동체의식만이 참다운 교회의 구실을 할 것이다. 공동체의식이 없는 교회는 사회를 새롭게 할 수 없을 것임을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가 함께 깊이 음미하고 대오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고언을 새로운 교회를 위해서 드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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