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시보 6월 28일자 3면 톱기사「종교사회 조사에 큰 차질」에 의하면 일부 본당의 비협조로 조사가 잘 안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확실히 35%라는 불응률은 너무 높다. 대상자 다름아닌 성직자들이요 특히 전국 주교회의서 결정 실시하는 것인 만큼 이 조사의 목적과 의의를 재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무릇 어떤 사회 조사든 몇%의 불응은 각오해야 하며 특히나 우편으로 하는 질문서에는 그 불응률이 더 높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러나 그 부진의 이유가 오직 성직자들의 결합에만 있는 것일까? 종교사회문제연구소 측의 기술적인 잘못은 없었을까.
물론 지난호 (7월 5일자)「독자론단」중『「한국 교회는「하이어랄키」는 있으나「코뮤니티」는 없다』고 지적한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성직자들의 마음의 자세가 잘못됐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만 나무란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주먹구구식 단정이다. 참된 원인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질문서 구성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질문서 첫 머리를 보면 회답자의 신분을 간접적으로는 알수 있게 돼 있다. 즉「○○교구 ××본당」이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질문 25에선『본당 운영이 잘 안 되는 것은 신부 탓이다』라는 조항이 있고 27에도『교우들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은 신부 탓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원래 주관적 동물이 아닌가. 자기의 잘못도 남에게 전가시키려하고 변명하길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다. 신부도 사람일진대 가령 본당 운영이 본당 신부 탓으로 잘 안 된다 할지라도 솔직하게 대답하기 전에 우선 기분부터 나빠질 것은 상정이다.
물론 오직 그런 정신상태 때문에 낮은 반송률이 나왔다면 그들을 나무랄 만도 하다. 그러나 조사자 측의 기술적 결함이라면 이런 책임은 조사자 측이 져야 하는 것이다.
사회조사란 그렇듯 막연한 방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사회학 과정에서도 사회조사 방법론을 독립된 학문으로 가르치고 있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조사에서는 회답자의 신분을 간접적으로라도 밝히지 않도록 찬문서 구조가 돼 있어야 한다. 밝힐 수 있게 해 놓고 회답률이 낮다고 함은 그책임의 큰 몫을 조사자가 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첫 번 질문서 57번엔 사회조사를 할 테니「협조적으로」나올 사람(주로 학교 교사)들을 적어 달라 했다. 표본차출을 해야 하니 응답할 사람을 소개하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사회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사람이면 다소나마 교회에 호의적이고 따라서 그 답은 교회에 유리하게 나타나리란 것을 말할 필요도 없다. 표본차출은 사회조사를 좌우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무작위 차출법」이다. 이 원칙을 무시하고 협조적인 사람들만 골라 종합한「데이터」를 갖고 제 아무리「콤퓨터」를 써서 분석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결과 위에 사목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할 것임을 덧붙여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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