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의 대낮에 거리에 나가 보면 한국 사람의 부지런함을 알 수 있다. 무더위 가운데서도 쉴 줄 모르는 행인의 걸음걸이, 방학에도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찾아가는 십대들, 날씨가 어떻든 간에 초만원의 영광을 잃지 않는 시내버스나 합승, 이런 것으로 인해 한국의 시가는 진땀을 빼며 열로 열을 이기려 하듯 오후 1시쯤 되면 텅텅 비게 된 로마 시가와는 대주적이다.
하루는 친구가 운영하는 일류 식당에 초청을 받았다. 냉방이고 지하실에 지었기 때문에 여름 속의 가을 같이 시원했다. 잠시 동안 얼음 쥬스를 먹으며 친구와 대화를 나눈 뒤에 다시 거리에 나섰더니 갑자기 사방에서 몰려오는 더위에 지칠 뻔했다. 그러다가 버스 안에 올라앉게 된 나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시원한 자리는 사회 안의 사회라는 것을 깨달았고 같은 서울이지만 그안에 크게 나눠 보아도 두 개의 세상이 있음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 이 두 가지 세상에 양쪽 다리를 하나씩 걸쳐 놓고 충실하게 살려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되었다.『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문득 생각이 났다. 더위와 싸우며 굶주림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쪽에는「하느님」이 계시고 편히 사는 사람 쪽에는「재물」밖에 없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동안에 재물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뿐이다.
한 해가 지나가고 여름이 돌아왔다. 서울의 거리는 점점 복잡해졌다. 하룻밤 사이에 예고 없이 노선을 바꿔 버리는 버스를 타는 것도 힘들거니와 어디로 가려면 지하도를 오르내려야만 된다. 시청 앞에서 내려도 시청에 들어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오염 문제는 냉방 실험실에 앉아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걱정이고 일반 행인은 먼지를 먹으며 걸어다니기에 바빠서 옷에나 흙이 묻지 않도록 하면 다행인 줄 안다. 당장 가야 되는 곳 해야 되는 일 오늘 닥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등등 행길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끔 자극을 준다.
하루는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아다니고 나서 어떤 분의 자가용을 타게 되었다. 70년의「콘티낸탈」이었다. 미국제라서 미국 사람답게 넓고 큰 차였다. 나는 올라타자마자 아까부터 흐르고 있었던 땀을 닦으려고 손수건을 찾았으나 땀은 어느새 식어 버렸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된 것도 언제였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했으며 달리면서도 달린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창문 밖에 낯 익은 길가와 차도를 쳐다볼 때마다 이것이 나하고는 멀어져 가고 있어 아니 놀랄 수 없었다. 사람의 무리 속에 끼어 걸어다닐 때에 내가「그들」중의 하나임을 절실히 느꼈는데 부드럽고 침대 같은 좌석에 몸을 담궜더니 이와 달리「그들」과 나 사이에는 별로 관계 없음이 저절로 인식되고 만다.
나는 열심히 자신을 살폈다.『같은 사람인가?』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옆에 앉으신 분에게 물어 보았다.『내 속이 매우 달라진 기분인데 어찌 된 일인가』라고 말했더니 그분이 대답하기를『현대화되면서 인간이 무감각하게 된 것도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동감임을 암시했다.
<지난호로 박갑성 교수의「일요한담」을 끝내고 이번 호부터 주매분 수녀가 본란을 맡아 집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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