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으로 나타나는 세계 인구와 가톨릭 신자들의 비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세계 인구 34억8천3백만의 18.5%인 5억9천백만이 가톨릭이다. 전 인구의 반이 넘는 18억1천1개만이 아시아 대륙에 살고 있으나 가톨릭은 2.5%에 지나지 않는 4천4백만뿐이다. 더 범위를 좁혀서 우리 한국이 위치해 있는 동부아시아는 8억9천만의 인구를 자랑하지만 가톨릭은 불과 0.5%인 4백50만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동부아시아는 그리스도를 모르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의 운명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동부아시아의 운명과 동보하게 된다는 것을 외교 정치가들이나 학자들이 예견하고 있으며 세계의 이목은 점차적으로 중공ㆍ일본 그리고 한국으로 집중되고 있다.
현 교황 바오로 6세도 이와 같은 사실을 간파하시고 11월에 필리핀 여행을 결정하셨고 또 아시아지구 주교들과 회견하시기로 결정하셨다. 아시아의 포교는 참으로 세계 교회에 주어진 현대적 중대 과업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업은 외부에 위임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人 자신들이 앞장서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7월 3일부터 31일까지 대만에서 열리는 아주지역 성서 번역자 회의나 이달 23ㆍ24 양일간 東京 성심여대에서 있을 아시아 신자 회의를 환영하며 아시아 제교회 간의 우호관계에 지대한 효과를 바라는 바이다.
현대 시대는 국제화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도 국제화에 관심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한국 교회는「로마」에 직속돼 있고「로마」일변도적이다. ROMA LOCUTA EST, CAUSA FINTA EST (로마가 말하면 만사가 해결된다)라는 격언이 우리 한국 교회에는 너무도 잘 실천되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바티깐」교황청에서 분리될 수도 해방될 수도 없다. 교황은 교회 일치의 원천이며 가톨릭교회가 한국 내에서 요지를 차지하게 된 것도「바티깐」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바티깐」과의 관계는 우리를 어디까지나 수동적태도에 놓았던 것 같다. 우리 교회의 국제화 단계에 있어 우리는 교황께 대한 좀 더 능동적인 태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능동적인 태도는 국제화 단계에 있어서도 아시아라는 발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교회의 국제화는 아시아주에서부터, 아시아주에서도 동부아시아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아시아 교회 간에는 왕래가 적고 서로가 모르고 지내는 것 같으며 이렇다할 서로의 협조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더구나 2차 바티깐 공의회 때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와 구주 주교들은 각각 그룹을 형성해서 공의회에 구체적인 안건들을 제출하고 자기들의 태도를 밝혔지만 아시아주 주교들은 서로 협조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점 우리는 하루 빨리 시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또 우리 교회가 지도권까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이 면에 있어서도 전혀 아무 것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아주 교회 국제회의에 참석, 활동하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개별적이라는 느낌을 면할 수 없다.
누가 참석하고 왔는지 무엇을 논의하고 결정했는지 한국 교회의 생각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여기에는 참석자 측에서 전달을 소홀히 하는 면도 있겠으나 한국 교회의「멤버」들 성직자ㆍ평신자를 불문하고 별로 큰 관심이 없었고 또 생활로써 증거하는 신앙의 뒷받침도 약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국제적으로 등장하려면 양으로서는 불가하나 질로서만은 가능한 것이다.
즉 신앙의 깊이로서만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교회가 신앙으로 완전 일치되고 우리 사회의 정신적 주도권을 잡고 이 사회의 평화와 정의를 보존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이것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고 모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민족은 아직도 강대국 대열에 들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통해서 국가도 국제 사회에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성인이 많이 나면 그만큼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 사실은 68년 24위 복자 시복식 때 우리가 경험한 대로다. 세계의 이목「바티깐」성 베드로 대성전을 통해 한국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 상태를 벗어나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우리의 시야를 한국이라는 좁은 범위에 둘 것이 아니라 아시아 대륙 나아가서는 전 세계로 넓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생활에 더 충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한국 교회는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통 답습에서 탈피하지 못하여 더 발전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한국 교회의 국제화 과업은 틀림없이 새로운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며 이 국제화 문제는 우리 교회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가설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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