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력. 저항할 길 없는 자연의 완력. 초복도 문턱에 닿았고 바야흐로 여름은 그 강폭한 절정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쫓기는 짐승처럼 숨을 헉헉 모아 쉬면서도 누구 앞이라 감히 찍소릴 할까 보냐, 순진한 척 두려운 척 일상의 계단 위를 분망하게 달린다. 물이 뚝뚝 흐르도록 수밀도는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며 야채가 부시도록 한꺼번에 시야를 압도한다. 현기요 숙정, 급박한 충격. 여름의 매혹은 언제고 이렇듯 가차없는 사로잡음으로 온다. ▲그뿐이랴. 소나기가 마구 퍼붓는 저물녘의 논길에서면 자욱한 비안개에 젖어 피안처럼 아아하게 완미롭던 산야. 긁음과 억셈의 구상 너머 그립도록 연연하기만 한 추상의 소근거림들… 이 양극을 본질속에 지닌 채 여름은 언제고 모순이었다. 모순이 공존할 수도 있는 넓이였다. 때문에 여름은 매양 질리도록 이렇듯 새로움이다. 다양함이다. ▲하여, 여름은 참으로 비리도록 언제고 젊음이다. 변덕이요 붕괴요 생성이요 성숙이요 다시 해체다. 불동과 경화를 모르는 젊음이다.『늙어 굳어지는 것보단 차라리 영원한 방황을』외치던 A. 지드의 소리가 녹아 흐른다. 겉으로 표출되는 숱한 변화를 현상적으로만 보노라면 도시 그 정체조차 종잡을 수 없어지는 계절이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저런 식으로 끊임없이 살아오다가 어느 새벽 문득, 대체 인생이 뭐냐는 자문에 새까맣게 휘몰리는 심경과도 흡사하다. 그러니 여름의 정체는, 생의 정체는 도무지 무엇이란 말인가? 알기 위해선 우선 그것들을 사랑해 볼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여름과 인생과…그 율조의 유사성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하루에도 무수히 변하는 하늘, 혹은 너무 익어 물러터지는 딸기의 퇴장과 함께 등장하는 싱싱한 도마도를 보면서도 제항무상을 느낀다. 눈에 뜨이는 모든 변조 속에서 불수의 소위 사체- 苦ㆍ集ㆍ減ㆍ苦를 실감하기도 한다. 苦는 생의 실상이요, 減은 苦의 절감 즉 해탈이요, 道는 해탈에의 방법이라 이르지 않던가. 요컨대 생명이 옛에서의 탈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리 깜빡 꺼져도 다시 파뜩 켜질 수 있는 빛의 탄력만은 결코 사몰하지 않으리라. 이것이 움직이는 모든 것의 궁극적 자랑이 아닐는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