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금년 12월에 35명의 새 목자들을 맞이한다.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는 10여년 형설의 공을 쌓은 부제들이 사제서품을 받고 포교 일선에 나서게 되었다. 해마다 몇 차례씩 보는 서품식이지만 새 사제의 탄생은 본인과 출신가정 또는 출신지방의 영예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발전이요 성장임을 상기하여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경하하고 환영하는 바이다. 현재 어려움은 어제 오늘 거론된 것이 아니고 사제들과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며 교회 당국은 그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줄 안다. 사제직의 본령에 관한 공의회 이전의 관념 즉 사제는 독신을 지키고 성사를 거행하는 사람이라는 통념이 아직도 사제 자신들과 일반신자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한국교회 내부의 사정은 아랑 곳 없이 현대사회가 오늘의 사제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너무나 생소하고도 무거운 것이다. 사제는 기도의 사람이요 성사의 사람일뿐 아니라 이와 같은 비중으로 말씀의 사람이요 증거의 사람이요 참여의 사람이기를 요구하는 성서적 사제상을 깊이 음미해 볼 때 오늘의 연약한 인간인 한 사제는 자기 사명의 중차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터이다. 이러한 요청에 반비례하여 여건은 점점 더 불리해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제가 본디 자기의 사명을 스스로의 힘을 믿고 수락한바가 아닐진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일으키시고 베드로를 견고케 하신 하느님의 팔은 오늘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더욱 당신의 사제들을 지지하실 것이 틀림없음을 믿고 겸손하게 그러나 과감하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 오늘의 여건이 어려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이루지 못할 사업에 사제가 도전한다는 것은 뿌듯한 감동과 떳떳한 긍지를 동반하는 쾌거가 아니겠는가.
사제의 업적이 범상한 눈으로 볼 때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능률과 효과와 조직과 합리성의 포로가 되어 숨막히는 현실을 노정하고 있는 현대에 그 누구인가 예외의 인간으로 남아서 아직도 인간의 의지와 영성이 기계나 조직의 노예가 아님을 보여주고 모든 사람이 지상 사물에 얼굴을 파묻고 허덕일 때에 고고히 얼굴을 들고 하늘을 응시하고 서있으면서 이 현세가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몸으로 증거하는 사제가 아직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예로부터 역사를 이루는 사람은 대중이지만 그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은 소수의 예외적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오늘의 예외적 인간인 사제는 한 인간으로서도 보람을 깊히 느낄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눈에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성취하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길은 좁고 험난하며 그 일생은 고독하고 고난에 찬 일생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길은 인류의 승리와 완성에 불가결한 요소임을 어찌하랴. 하물며 주 친히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때』 (묵시록 21장4절) 어린양의 옥좌 앞에 뫼시고 설 것을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랴. 사제의 적능은 영원을 기간 안에 벌써 실현시키는 것이다.
새 사제들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도 좀 더 새로와질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왜 그렇게 역사도 얼마 되지 않는 인습에 사로잡혀 있는가. 그렇게도 성직자와 평신자의 사이가 막혀있는가. 왜 그렇게 본당과 본당 사이에 교구와 교구 사이에 지역활동과 전국사업 사이에 넘나들지 못하는 장벽을 인위적으로 쌓아올리는가. 좀 더 호혜적 관심과 광범위한 인사교류와 유무상통하는 상호원조의 체제나 방법을 시도할 수 없는가. 새 사제들의 새로운 포부를 아량 있게 받아들일 용의는 없는가.
선배사제들은 그 하잘 것 없는 지위와 자리와 수입에서 좀 더 초연할 수 없겠는가. 성직사회에서 좌천이니 승진이니 하는 용어와 빽이니 줄이니 하는 더러운 문자를 불식할 수 없겠는가. 예수님이 언제 우리에게 정치를 그다지도 가르치셨기에 교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노는 무리들이 횡행하고 있느냐 말이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관계자들은 전통이라는 간판 뒤에 안이하게 숨어버리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닌가. 성직자나 평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기성세대는 그들이 새 사제들에게 기대하는 그만큼 새 사제들도 기성세대의 새로운 움직임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새 사제들이 기성세대의 타성에 동화되기 전에 시급히 무엇인가 움직여야 하겠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런 넋두리조차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미구에 닥칠 것이다. 역사는 준엄하다. 전교 황금기에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 가톨릭은 후세의 사람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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