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생각하는 갈때>라고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신앙(信仰)하는 갈때>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세상은 신앙자에게나 불신앙자(不信仰者)에게나 다같은 일터요 싸움터다. 우리도 일하며 싸우고 그들도 일하며 싸운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 양자간의 구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요즘 흔히 농담으로 말하는 시민증(市民證)인지 도민증인지가 겉으로 나타나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우리는 궁극에 있어서는 이세상의 시민이 아니고 천상의 시민인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이지만 이 목표가 아니면 우리의 모든 일과 싸움이 허사라는 것은 다시 말할 것이 못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만치라도 지상(地上)의 이익이나 권세를 위해서 일하고 싸우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는 지상적인 장애가 없다.
▼가톨릭은 기업체(企業體)도 아니오 어떠한 당파(黨派)도 아니다. 싸운다고는 했으나 우리의 적(敵)은 물질도 인간도 아니다. 우리의 유일한 적은 악마인 것이다.
▼지상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싸움이 각금 빈약하게 보이고 불리한 싸움을 하는 것 같이 보일 것이며 우리 자신의 마음도 가난하고 슲으고 아서지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앙하는 갈때>의 비참성이 아니냐. 그려나 그뒤에 동시에 위대성이 숨어있다는 커다란 「파라독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가난한 마음> 그것은 순수한 무기(武器) 절대적인 무기는 패배(敗北)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순수한 무기 그것은 순수하기 때문에 땅의 극변에서부터 극변에까지 도달한다.
▼우리는 후조(候鳥)가 시간(時間)을 통과하여 우리의 목적지로 향해가면서 휴식도 하고 대열(隊列)도 정비하기는 하나 결코 이곳을 영주지(永住地)라고 생각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여장(旅裝)은 경쾌하고 투명(透明)하다.
▼<가톨릭시보>는 이러한 과정을 보도하고 증언(證言)하는 것이 그 사명이다. 우리는 지상의 사물을 정복하기보다는 그에 봉사(奉仕)하고 그것을 탐욕하기보다는 그것을 봉헌(奉獻)하고 그것을 경멸하기 보다는 그것을 감사한다. 그것은 순간마다 영원(永遠)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극히 고귀(高貴)한 기회인 것이다. 때에 따라 이것을 보도(報導)하되 그 마지막 도달점은 우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