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도시는 경주라 한다. 그리로 찾아가는 사람 중에 수로 따지면 수학여행하는 학생이 제일 많겠지만 그 이외에도 외국 관광객을 비롯하여 국내의 고고학자, 작가, 문인, 불교 신자, 신혼부부, 그리고 별 목적 없이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줄 안다.
나도 어느날 다행히 보고 싶었던 신라 고도에 찾아갔다. 높고 깊은 산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암 안에 들어서자마자 석가의 얼굴에 눈을 박고 말았다. 둘러싸인 벽에 다른 보살도 있지만 볼 마음이 없었고 정성을 다해 설명해 주시는 스님의 목소리는 시끄럽기만 했다. 부처님의 얼굴은 넘치는 평화로 인간의 영을 재워 주듯 매혹적이며 나는 거기서 혼자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다가 불국사로 내려가게 되었다. 문간에 주저앉아 안내사를 큰 소리로 외우시는 여스님이 조금 내려가면 왼쪽에 아미타불이 있는데 가보라고 하시기에 가보았다. 과연 안내자의 말씀대로 볼 만했다. 미소를 지은 이 부처님은 말없이 사람을 흐뭇하게 해 주는 힘이라도 있듯이 그 앞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없지 않은 걱정과 근심이 모두 우습게 보인다.
죄나 죽음에 대한 생각은 별로 나지 않으면서도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불상은 신이 아니다. 예술 작품이라면 그렇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미타불 같은 불상은 기쁨과 착함과 자비로 향하는 신비를 나타내며 생명의 신을 회상케 해 준다.
나는 집에 돌아와 고상 앞에 꿇어앉아 기구를 올리려 했다. 그러나 불국사에 그랬는지 가시관을 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아미타불의 얼굴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여기서는 내가 구원을 받아야 될 하나의 인간으로서 내 죄의 대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구세주의 죽으심은 나로 하여금 죄책감과 아울러 통회와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해 주었지만 왠지 약간의 슬픔 속으로 나를 몰아넣았다. 어쩔 수 없이 이를 느끼면서도 나는 아미타불을 예수님의 고상보다 더 좋아해서는 되겠는가고 자신을 책망하며 고민했다.
미사종이 울렸다. 매일 같이 성당에 들어가 노래 부르며 제병을 바치며 영성체를 했다. 그러나 오늘의 미사는 특별히 뜻 깊었다. 그 중에 나는 고상의 전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돌아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신 것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결코 슬프지 않다. 미사 중에 고상을 보면 안타까움이 기쁨으로 변한다.
아미타불의 표정에 생명이 가득 차 있듯이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머리도 정적인 것처럼 보았기 때문에 착각을 이루었지만 동적인 것으로 정확히 본다면 눈 앞에 생명이 선하게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온 몸과 온 영신이 생명을 누리게 된다. 불상이 보여 준 평화의 신비도 부러워할 만하나 인간의 마음이 실지로 체험할 수 있는 그것과 비하면 역시 그림은 그림뿐일 것이다.
부처님의 모습이 추억에 떠오를 때마다 나는 견본을 보고 상품을 사러 가듯 오늘 중으로라도 보다 풍부한 생명을 찾으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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