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로써 1973년 대림절에 접어들었다. 이 해도 마지막 달이요 또 한 해가 막 사라지려 한다. 누구나가 일년의 마지막 달에는 무엇인가 허전한 마음을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초에 가졌던 모든 희망과 포부를 생각하고 현실의 사실을 생각할 때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한 해의 생활설계를 그리고 희망에 벅찼던 그날은 영원히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인간은 새롭지도 않은 것을 새로운 듯이 또 다른 날을 맞이하고 지나갔던 날과 조금도 다름없을 내일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 그것이 비록 거짓이라 하더라도 그 거짓마저 없다면 인간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모든 사람들의 겪었던 시련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약속 없는 희망이 인류역사를 수놓아 왔고 거기에 인문의 생사가 달려있었고 전쟁과 평화가 점철되어 왔다. 실로 인류의 희망이란 희망이라기보다는 살기위한 자기 기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한 우주속의 좁쌀알만도 못한 지구덩이가 지니고 있는 무수한 문제들은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전쟁과 평화 정의와 부정 자유 인권억압 가난 인종문제 기아 에너지 인구 등이며 물질문명이 가져온 혜택보다는 절실한 생활의 격차 문제 빈부의 격차 고용주와 고용인 실직자와 기타 사회문제 등 국제간의 이권문제 경계선 사상으로 인해 적대시하는 민족 간 국가 간 등 문제들의 수는 무수하다. 그것뿐이 아니다. 저개발 국가 간의 문제 또 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 등 한국만 하더라도 경제발전에 뒤따르는 여러 가지의 불균형 여야 정치문제 국민과 국가 간 학생 청년문제 노후대책과 연금 실직자 자본 빈곤에서 오는 차관 저축 새마을운동 도입 수출 등 농업국으로써의 식량부족 등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의식주 의과 및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를 모두 포함해서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인간은 실직 질병 무능력 과부 노령 혹은 그 외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생기는 생활력의 부족 이러한 경우에서 자신의 안전을 유지할 권리를 갖는 것이라고 UN 인권선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망이지 현실은 아니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UN 자체에서 아무리 노력은 한다 하지만 한 국가를 명령할 수 있는 초국가의 권력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주체성을 넘어선 지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의 편재 같은 것은 막을 길이 없다. 인류가 안고 있는 이러한 제 문제를 직시하면서 크리스찬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가 창조되고 오늘까지 기다리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란 그때마다 사람을 속여 왔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사실만이 우리를 속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탄생과 부활이다. 모든 예언자가 구세주 탄생을 예언해왔고 사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의 구원의 혜택은 전 인류에게 복음으로 전파되었고 그리스도 부활로써 증명되었다. 우리게 남은 단 한가지의 마지막 희망은 영생이다. 물질문명의 모든 기계는 속일지 몰라도 위대한 정치가가 백성을 속일지 몰라도 부모가 자식을 속일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재임과 인류 구원의 약속만은 속이지 않는다.
현세에서는 무엇이 약속대로 이루어졌단 말인가. 우리는 이 각박하고 허위와 기만이 가득 찬 현세에서 무엇을 더 믿고 살겠는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믿고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법이여 신조라야 할 것이다. 시간은 쉴새없이 흐르고 날은 기다리지 않고 지나간다. 이렇게 우리 인생도 늙어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변의 진리 곧 그리스도 탄생이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갖다 준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기다린다. 그 시기를 대림절이라 한다.
우리가 이 대림절에 어떤 태도로 기다려야 하는지는 크리스챤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 이미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은 이루어졌다. 이천년 전에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졌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의 관문은 진리의 제복을 입고 정의의 모자를 쓰고 선의 지팡이를 짚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것이다. 대림절은 내가 있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벅찬 가슴을 안고 마주 달려가야 한다. 적극적인 진리와 정의와 선의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눈앞에 적은 이익 때문에 진리와 정의를 외면했을 때 우리에게는 희망도 생명도 평화도 없다. 희망이란 신앙의 어머니며 영생의 양식이고 만인에게 평등하게 베풀어지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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