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크고 작은 목표를 달성키 위해 여러 가지 과정을 밟는다. 학생은 학과목을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고 수도자는 수련기를 거쳐야 서원을 하게 되고 군인도 훈련을 받아야 장교가 될 수 있으며 기술자도 실습기를 거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과정」이란 것은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나 겪어 보게 되는 것이다. 밤을 먹기 위해서 불을 때는 것도 그것이며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다. 크게 생각하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수련 중에서 수련원 생활이 좋아서 기한이 다 차도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말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무리 과정에 단 맛이 있다 하더라도 이보다 목표 달성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런데 살다 보면 과정에 쓴맛이 섞인 때도 많은 것 같다. 높은 사람을 만나뵙기위해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사람이 마침내 그분을 만나게 되면 지루함을 잊을 수 있을지라도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심지어는 과정이 너무 길고 어려워 이에 지쳐 목표의식까지 잊어버릴 경우도 많다. 매일 맛있게 식사를 하다가 식모가 나갔기 때문에 부엌에서 몇 시간 동안 일했더니 밥맛이 떨어지는 일은 가정주부들이 가끔 경험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서울~춘천간 직행버스를 타 보았다. 그랬더니 새 차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내 번호대로 좌석을 찾아 앉았을 때에 기분이 좋았다. 주위 사람들도 그렇듯이 단추를 누르며 의자를 뒤로 눕혔다. 앞으로 올렸다 하곤 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보니 불편을 느꼈다. 내 머리를 45도로 축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아예 의자에 기대지 말고 똑바로 앉아야만 했다. 내가 앉았던 자리만 이랬는지 모르지만 나는『두 시간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축되어 보이지도 않는 압력으로 인해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목적지를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모든「과정」을 참는 것은 대단히 좋지만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별 도리가 없으니 훈련을 받는 사람은 비참해 보인다. 인간은 과연 수련기가 지나는 것만 바라며 살아야 되는가? 나는 경춘가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자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숙인 채 그리 하려니 목만 아픈 것이 아니라 치뜬 눈도 아프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떠오른 것이 지난 번「펜」대회의 주제가 된「해학」이란 것이었다.
내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 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도 나다. 바꿔 말하자면 이 상황도 현재로서의 나와는 같아지지 못한다. 고로 나는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보이는 나야말로 나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목과 눈이 아픈 것도 잊어지고「해학」이란 바로 현재라는 순간 속에 절대성을 찾고 즐거움의 문을 뚫는 것이다. 하느님은 곳곳에 계시다는데 하필이면 왜 우리가 인생의 목적지에만 하느님을 몰아넣으려고 하는가?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