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적이라 평을 받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은 인간을 깊은 호숫가로 유인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조용하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타내는 곡이다. 이와는 대조적인 제5번「황제」는 위대한 전진을 재촉하고 가장 남성적인 면을 드러내는 곡임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요즈음 나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들을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즐거이 되새기고 있다. 군복을 입은 지 불과 5주간. 그러니까 특수간부 후보생으로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 5주 후에 외출이 시작되었고 가장 즐거운 첫 외출과 협주곡이다.
첫 외출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귀대 시각 2시간 전에 저녁식사를 양식으로하게 된 그 식당은 고급 식당으로 각종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라식이라곤 몇몇 소품 이외에 베에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꽂혀 있었다. 그 곡을 신청하고 자리에 앉은 나는 그날 저녁식사를 반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베토벤을 너무 많이 섭취한 탓이었다. 앞으로 3년 간의 군종장교로서의 생활을 막연하게 그려 보면서 베토벤의 그 위대한 전진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었다. 보병학교에 입교하기 얼마 전에 퍽이나 좋아했던 곡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요사이「황제」를 들으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전진의 발자국 소리를 느끼고 있다. 자주 국방의 중대한 목표를 두어 정신 무장 강화와 장병들의 인격 향상에 몰두하고 있는 군복 입은 신부들의 묵직한 행군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스스로의 사명감을 되새기면서 후퇴를 모르는 젊은 신부들의 대열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남에서 귀국한 군종신부의 검은 살결을 볼 때 전후방에서 단본부로 찾아오는 신부들의 기름때 묻은 장갑을 볼 때 오트바이를 타고 부대 방문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상상할 때 그리고 공장에 다니면서 노동하는 부인이 군종후원회에 가입하여 매달 직접 회비를 납부하러 오는 그 착하고 고마운 마음씨를 볼 때 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의 위대한 전진의 소리를 듣고 있음을 느끼면서 자신도 그 대열 속에 함께 걷고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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