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광복절 25주년 기념식사 속엔 평화적 남북 통일을 위한 회기적인 선언이 있었다. 한국인이며 동시에 가톨릭 교인인 우리는 이 선언에 대해서 우선 대폭 환영을 표명하는 바이다.
선언의 골자는 국토 통일이 민족의 숙원이긴 하나 전쟁만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며 통일 가능성의 실마리는 70년대 후반기에나 잡힐 것으로 지금부터는 접근 방법을 구체화해서 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접근 방법은 첫째로 북한은『무장공비 남파 등의 전쟁 도발행위를 즉각 중지하고』이 점을『명백하게 내외에 선언하고 이를 행동으로 실증해야 한다』는 선행조건을 실천해야 하고,
둘째로 북한이『UN의 권위와 권능을 수락한다면 UN에서의 한국문제 토의에 북괴가 참석하는 것도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민주주의와 공산 독재 중 어느 체제가 국민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으며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회인가』를 입증하는 개발과 건설과 창조의 경쟁에 나설 용의는 없는가』고 반문했다.
신중한 무게를 둔 박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는 평화적 남북 통일에 획기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1945년 해방 후의 혼란 1950년의 골육상잔의 동란, 그 이후의 복구작업, 60년대의 근대화 작업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은 차츰 정신적으로 통일되었고 주체의식이 강해져 갔으며 국제 외교에 있어서도 상당히 큰 자신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통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취했던 소극적 태도를 벗고 좀 더 적극적인 태도와 포용하는 태도를 취해 선의의 경쟁에 나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국력이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차제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사랑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일치를 낳고 평화와 정의를 생산한다. 그리고 사랑의 일치는 서로의 개성을 무시한 일치가 아니라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화로서 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유산은 사랑과 일치, 자유와 평화, 정의와 대화 등이다. 그리스도교인은 이 천국의 유산을 지상에 보급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인의 사회 참여가 되는 것인즉 적극적인 호응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의 구상은 확고한 선행조건을 갖고 있고 평화 통일이 단박 실현될 것도 아니므로 우리는 남북 통일문제의 정치 면에 대해서 언급하고저 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남북 통일이 정치적으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치적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도록 자극하고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ㆍ문화ㆍ사회ㆍ경제의 성장이요, 대화에의 모색이다.
대화야말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소산이고 현 세계가 발견한 정신적 일치의 방법인 것이다. 수백 년 간 분열되었던 신구교 간의 일치도 대화로써 시작되었고 미ㆍ소간의 세력 대립도 대화로써 완화하겠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지 않는가?
고로 크리스찬은 대화의 올바른 자세를 구현함으로써 남북한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조급은 금물이다. 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체의식이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체의식이 약할 땐 상대방에게 지배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물론 실력 배양과 정신의 향상으로 이루어진다. 종교적 신앙은 주체의식을 불어넣는 데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신앙인이야말로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의 주체의식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빼앗길 수 없는 주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가톨릭 교인들은 아직도 이 점에 있어 너무나도 애매하다. 깊이 반성하고 새로운 신앙생활을 모색하도록 노력해야 할 줄 믿는다.
대화의 둘째 조건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즉 문호의 개방이다. 상대방에게 침범될까 아성을 쌓고 모든 고통과 희생을 회피하며 손해 입을까 우려하고 권세에 애착이 강한 자는 참된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마음이 가난한 자는 진복자이다」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남북한 간의 대화의 길을 열어 놓은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그동안 주체의식을 강화하였고 또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 문호 개방으로 향하고저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거대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과연 김일성 도당이 도발행위를 중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우리는 단순히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유와 평화에 대한 애착심을 불어넣어 주실 수 있고 또 진실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도록 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며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북한을 위한 기도의 달을 정하도록 한국 주교단에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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