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을 맞이하여 잔칫상이 여기 저기 벌어졌다. 35도까지 올랐던 무더위도 고개를 숙인 듯하니 해방된 기쁨을 새삼 느끼며 축하를 나누는 것도 지당한 일이다. 나도 어떤 웃어른이 베풀어 주신 오찬회에 초청 받고 나갔다.「대중식사」의 표시가 크게 붙은 요리집은 어쩐지 아담했다. 들어가 보니 모인 분이 남자뿐이었다.『사모님이 안 나오셨습니까?』라고 옆에 사람에게 묻자 그분이 웃으면서 대답하기를『이런 데서는 동령부인 안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씀의 뜻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예쁘게 꾸민 여자들이 나와 손님과 손님 사이에 끼어앉는 것을 보았다. 수도복을 입은 나로서는 무척 당황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십여 명의 손님은 나에게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음을 알았다.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짝이 대신하여 집어 준 안주를 먹기도 한다. 분위기는 대단히 부드러웠으며 여자의 솜씨는 안마를 해 주니 피로는 빨리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남자분들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어 보았다.
때로는 불고기집에 가보기도 했다.「칵텔」이나「가든ㆍ파티」에도 여러 번 가보았다.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경우를 제외하여 남자의 수가 여자보다 많은 것은 보통이다. 그런데 회의 장소에서 남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식탁에서 본 남자의 태도도 항상 딱딱해 보였다.
식탁에는 말 안 하는 것이 예외이기 때문에 그랬는지 여하튼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과 일어나는 일까지도 다 모르는 척한다. 잘 아는 사람끼리 모이면 식사를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농담도 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전하는 것은 드문 일인 것 같다.
요정은 이와 대조적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온갖 배려를 하고 시중해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에 응하여 남자도 자기의 본모습으로 돌아가 처음보는 여자에게까지 칭찬을 보내며 음식을 권하며 대화를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나만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처럼 약간 건방지게 보였던 남자가 기생 앞에서는 오히려『너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보다 인간적인 면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그야말로 모든 피로가 풀린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본 남자의 모습이 풀려져 있는 그들의 참된 모습이라면 그들이 밖에서는 긴장감 속에서만 사는 것인가? 사람은 언제나「사회」안에서만 남을 만나게 된다. 요정 같은 곳만은「사회」의 경계선 밖에 있는 특수영역이 된다. 사회에서 자기 아닌 얼굴을 보이고 저 하면 할수록 긴장이 심해지고 따라서 요정 같은 자리에 드나들 필요를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특히 가정에서도 긴장감을 풀 수 없을 경우에 더욱더 그럴 것이다. 아무도 기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듯이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 같다.
광복절의 그 상은 나 때문에 깨졌는지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우리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시는 그 상 둘레에서는 모든 긴장감이 다 풀리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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