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을이다. 새벽마다 문득 근엄해지는 실내. 확고한 침묵이 온 내면을 압도하고, 존재의 감각이 보다 심원한 깊이로 침전하는 계절이다. 잊은 채 버려 뒀던 모든 것을 더 이상은 도저히 버려둘 수 없어지는 철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언제고 채찍이다. 도망도 에누리도 용납되지 않는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처럼 맹렬히, 가슴 복판으로 치달려오는 세력이 된다. ▲누구나 할 일이 많아지리라. 아픔도 회오도 많으리라. 생, 그 고달픈 영광을 위해 그 많은 노력을 바쳐 왔음에랴. 진실로 아름답고 위대한 모든 것은 오직 고뇌를 통해서 오는 것, 얼마나 철저하게 고뇌하고 땀 흘려 봤느냐만이 한 인간 전체를 저울질할 수 있는 유일한 척이 되지 않을까. ▲참으로, 고뇌도 진통도 웃음도 없는 인생, 노작에의 정열조차없는 인생만큼 무미건조한 것도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정신과 육체의 게으름에서 기인하는 상태일 것이다. 최선을 다 기울인다면 어디에나 충분히 더 잘 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찮다고 매양 소극적이 되기 때문이다. 의지 발동을 보류함으로써 뭐든 수월케 스쳐 보내는 것이다. 젊을 때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서 연기하고 늙어서는 아무리 하려 해도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개탄만 한다. 그것이야말로『습관적으로 자신의 최대 역량보다 낮은 상태로 살아온』게으른 사람들의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자기 합리화일 게다. ▲자신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최극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가을에 우리는 모두 그 점을 곰곰히 묵상해 봐야겠다. 여름 해변에 버려뒀던 모든 것, 하느님에로의 자세, 기타 자신에게 절실한 모든 문제를 직시, 전 존재로 포옹할 줄 아는 용기부터 우선 배워야겠다. 스스로의 미력열재에 부심하는 옹졸하고 못난 자세보다는 하루하루 속에 남김없이 자신의 최대역량을 쏟아넣는 태도야말로 관심해야 할 골자일 것이다. 숭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루하루의 충실이 쌓아간 높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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