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얼굴을 볼려면 거울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타인」이라는 거울 속에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부모 형제부터 길가에 우연히 만나는 낯선 사람까지 모두 내 거울이 될 수 있으며 나도 또한 그들의 거울이 된다. 철없는 아이가 어른이 칭찬해 줄 때는 의기양양하고 꾸지람을 들을 때는 사건의 크고 작음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그저 자기는 아주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전부 나를 밉게 보면 나 자신도 스스로 미워진다. 남이 나를 취급하는 대로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만다.
자아인식이라는 것은 맑지 못한 거울로 인해 흐리게 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 거울은 많지만 타인의 모습을 정확히 비춰 주는 일은 극히 적다. 때로는 사람을 아래와 위로 눌러 작고 퉁퉁하게 만들거나 양쪽에서부터 압축시켜 크고 가늘게 하여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거울도 있다. 아무도「날인 찍히는 것」을 원치 않지만 실은 날인 투성이로 등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걸음이 조금 비틀거린다든가 서울 사람 가운데서 사투리를 쓴다든가 어색한 점이 있으면 이것으로서 알려진다. 거울과 나 사이에 무엇인가 빛이 지나갈 수 없게끔 장애물이 있어 거울은 제 역할을 다 못하게 되니 사람은 자아를 인식하기에 퍽 힘든다.
그런데 귀중한 거울이 하나만 있으면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되어 나머지 99개의 거울이 다 거짓 모습을 보여 주어도 상관없다. 이 맑은 거울은 바로 참된 친구다.
하루는 어떤 사람한테서 내 친구의 결함을 고쳐 달라고 부탁 받았다. 나는 그날부터 친구에게 이러한 결함이 과연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하여 친구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때로는 질문을 하여 친구의 사상이 어떤가를 시험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확실치 않았으나 나는 내게 부탁한 사랑의 말을 잊지 못했다. 결국은 이 말을 믿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거울의 역할을 잘 하고자 하여 열심히 친구에게 충고 드릴 기회를 기 다렸다. 마침내 기회는 왔다. 나는 있는 충성을 다하여「진실」을 말했다. 그러나 친구는 무언으로 대해 주었다. 그이의 섭섭한 얼굴을 통해 나는 내 눈이 흐렸음을 알았 다. 내가 친구를 살피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그이와 멀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남 의 눈을 안경 삼아 친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정은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맑은 거울은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나 장점도 단점도 보는 사람의 인격과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 인격체 안에서「결함」을 보는 것은 신뢰감을 지닌 채 보는 것이요「결함」을 따로 보고 분석하는 것은 그 순간에 신뢰를 잃어 버린 것이다. 강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는 친구의 본모습이 떠올라 충고도 필요 없이 두 친구는 스스로 자신을 고칠 것이다. 이와 같은 거울만은 진실을 비춰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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