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가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울러 이 발전의 이면에는 평신도들의 양적 및 질적 확대와 그들의 능동적인 활동이 지대한 공헌이 되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로 수많은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외국 선교사들의 고착 관념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한국 교회에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금년 하기 휴가 중에도 각 계층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회합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지난 8월 24ㆍ25 양일간 대전에서 열린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 정기총회, 정의ㆍ평화위원회 창립총회 및 한국「소데빡스」(사회발전과 평화위원회) 창립총회는 우리의 주목을 끄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전서 있은 일련의 회의가 드러낸 헛점과 소망스럽지 못한 결과는 모든 사도직 단체가 한계점에 이르러 공전을 거듭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와 평신도 사도직의 전개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압박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금번 회의 기간 동안에 보여 준 안일주의적 타성과 이타성에서 나오는 제 준비의 부족 및 실천력의 약화 등의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평신도 사도직 자제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가 결의한 내용을 보면 ①남북에 갈려 있는 신자 부부들의 생사 확인운동의 전개, ②모자보건법에 대한 주교단 성명의 지지, ②순교 자료 및 유물 수집에의 협조, ③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기금 마련, ⑤평신도협의회의 교구별 구성 촉진 등이며 그 밖에 오는 11월에「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시아 주교회의에 평신자를 참석시키도록 주교단에 건의할 것 등을 의결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물론 결의 사항에 대한 전문적 분석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시 한 번 열거해 봄으로써 이들 결의사항이 과연 평신도 사도직의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점과 일치하는가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이들 결의사항에 대한 실천적 방안이 어느 정도 수립될 수 있을까를 진단해 보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염불의 냄새가 너무나 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다음날 있었던 한국「소데빡스」창립총회는 지난 5월에 이미 개신교와 가톨릭 측이 한 자리에 모여 창립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고 이에 따라 가톨릭 측에서는 정의평화위원회 창립총회를 서둘러 갖는 등 그런 대로 형식적인 준비는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측의 준비 미비란 이유로 유산되고 말았다.
이에 본란은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형식화 경향에 대한 몇 가지 요인을 들춰 보고자 한다.
첫째 평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외국에서 말하는 소위 시대적 필요성에 너무 지나친 영향을 받고 조직된다는 점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방법과 정도를 여하히 결정하고 선택하느냐에는 숙고와 현명과 책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 과학은 바야흐로 고유성을 갈구하는 단계에 왔다. 평신도 사도직의 여건 조성에 있어서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시대적인 차이 및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고 적합한 체제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층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둘째 성급하게 도입되는 사도직 운동은 그 도입과 정상 필연적으로 하향식 구조를 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하향식 구조가 전달력을 발휘하자면 상위 개념을 최말단까지 옮길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란에서 이미 누차 언급한 바 있지만 실천 없는 조직이 한국 사도직 운동의 병폐적 풍토로 되어서는 안 되겠다. 평신도 사도직 운동은 탁상공론으로서는 이룩되지 않는 것이다.
즉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지도층은 기본적 사도직 단체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향식 구조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조직과 실천문제는 현실적으로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에 의해 다뤄져야 할 것이고 현재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실천자들의 교양과 지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한정성을 들 수 있다.
각 계층에서 이뤄져야 할 평신도 사도직 운동이 한정된 인물들에 의해서「더블해드」로 전개되고 있다.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 격인 인물이 많다. 따라서 모든 사도직이 획일화되고 무기력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해마다 모이는 그 인물이 올해도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한다.
가톨릭 신자의 분포가 이다지도 단조롭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각계각층에 신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왜 이들을 개발하지 않고 버려 두어야만 하는지 심히 의아로운 것이다.
획일적이고 직접적인 선교 사명만이 목적이라면 성직자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신도 사도직의 발생 원인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분업화에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분업과 조직 밑에 제한을 받는 인간들이 각기 특수한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선양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몇몇 유명 인사들이「리더」의 위치를 석권하고 있는 동안은 평신도 사도직 운동이 현실 세계 속에 침투하기란 참으로 요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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