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헌금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거리에서 발견한 불우한 사람에게 몇 푼의 돈을 희사하기는 힘든다. 따지고 보면 양자는 서로 다른 점이 없을 줄 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는 직접 간접으로 서로 도우며 살고 있는 사회라 하겠다. 하지만 반대로 서로 헐뜯고 직접 간접으로 뺏으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사회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많고 적고 간에 내 것을 희사해서 남을 도운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며칠 전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②801□의 다이알을 돌렸다. 나의 위기를 도와준 은인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은 흥분되고 있었다. 신호를 받고 수화기를 든 사람은 바로 내가 찾는-나를 도와준 주인공이었다. 분명 학생으로 알았는데 직장을 가진 총각임을 알았고 더욱 반가운 것은 교우이며 본명이 아우구스띠노라는 것이었다. 입은 은혜를 사례하기 위해 그와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나는 나 자신 신자로서의 생활을 반성해보았다. 지난 여름 부산 어느 버스 안에서였다. 어린 학생이 차비가 없어 쩔쩔매는 광경을 보았다. 호주머니에 있어야 할 20원이 없어진 모양이다. 내 호주머니에는 잔돈 20원과 1백원짜리도 있었다.
나는 1백원짜리를 거슬러 쓰기 아까와 모른척 외면하고 말았다. 지금 새삼스럽게 그때의 일이 후회되면서 쩔쩔매던 그 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 내가 만나서 은혜를 감사할 일에 비하면 너무나도 쉽게 그 학생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을.
지난 10월 3일 밤 나는 친구의 집에서 너무 오래간만의 정다운 대화를 나누다보니 흐르는 시간을 잊고 있었다. 밤 12시 20분 전에야 부랴부랴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달려 나왔다.
거리는 인적이 드물고 한산하다. 택시를 잡아야 할 초조한 마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한 대의 빈 택시가 다가온다. 이때 나는 호주머니를 뒤져보았다. 그러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 있어야 할 5백원짜리는 어디로 갔을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이 번개불처럼 지나가고 1초1초 흐르는 시간이 가슴을 죄어든다. 이 호주머니 저 호주머니를 마구 뒤지며 발을 동동 굴렀다. 또 한 대의 빈 택시가 다가온다. 이것이 마지막 택시라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시공에서 갈 바를 모르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때『차비가 없는가요 내가 드리지요』하면서 2백원을 내놓는 학생같이 보이는 총각이 있었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받아들고 말았다. 그의 주소도 이름도 천천히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간신히 택시에 오르며 급히 서둘러 묻는말에 ②801□라고만 대답하는 숫자를 잊지 않으려고 택시 안에서 몇 번이고 되씹으며 외웠다.
이런 얘기를 나는 집에서도 친구에게도 들려주었다『이 각박한 세상에 남의 것을 해치려는 사회악이 얼마나 횡행하는가. 그러나 아우구스띠노는 분명 천주님의 아들로 자랑할 수 있는 세상을 걷고 있으리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나는 내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할지」다만 이제부터라도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나의 은인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천주님께 은총을 빌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조용히 나의 내면적인 인격이라도 닦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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