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학길에 싱겁게 생긴 남학생 두 명이 버스를 탔다. 다음 정류소에서 날씬한 맵씨의 키가 큰 여대생이 하이힐을 신고 버스에 오른다. 짓궂은 한 학생이 그 여대생을 보고『못나게 크다』라고 한마디 던진다. 그때 그 여대생의 반응이 재미있다. 샐쭉한 모습으로 그 학생을 향해『네가 작지 내가 크나?』반문하며 톡 쏘아붙이는 말에 이 싱거운 학생들은 볼기라도 한 대 얻어맞은 양 질려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몇 정거장 지난 다음 로만칼라를 한 키가 훤칠하게 큰 외국 신부 한 분이 올라탔다. 또 가만히 잊지 못하고 옆 친구와 눈짓을 하며 외국분이라 말을 알아듣지 못하려니 생각했던지『더럽게 크다』라고 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 신부님은 학생 앞으로 다가가 웃으면서 몸을 굽혀『너무 키가 커서 미안합니다』라고 대답하신다. 말한 학생은 얼굴이 홍당무 같이 되어 말이 없다.
또 한 번 다른 의미로 질려 버려 다음 정류소에서 훌쩍 내려버렸다.
꼭 같은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두 편의 반응이 어쩜 그렇게 반대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길로 성당을 찾아갔다.
물론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그토록 부드럽고 겸손한 말로 대해 주었던 그 신부님의 매력 때문에 곧장 성당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상은 어느 분의 입교 동기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언어가 남용되는 것 같다)
누구나 친절하고 겸손한 말을 좋아하나 자신이 쓰는 데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같이 참된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말은 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매력이 담겨 있다고 외치고 싶어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숱한 단어를 노출하고 있지만 과연 그 중에 몇 마디가 이웃에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크리스챤의 향기를 지닌 언어들인지 의문이다. 2천 년 전 그 옛날 예수회의 발 아래 엎디어『주여 그러하오나 개들도 자기 주인의 식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습니다』라고 한 가나네아 부인의 겸손한 한마디 말은 그리스도의 전능을 빼앗아 병든 딸을 낫게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니 더욱 겸덕에 절여진 박력 있고 부드러운 말을 배우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김병일 나상조, 김 베다, 박춘식 4신부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부터 홍 시길린데(포교 성베네딕또회 수련장), 조용주(엠마누엘라성모회 흑석동 분원장), 고영희(계성여중 교장), 박까타리나(성심여고 교사) 수녀님이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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