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에 접어들면서 무려 17명의 오지리인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국 교회와 한국을 방문하러 왔다. 3일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입단한 13명으로 구성된 일행과 4일 김포공항을 통한 오지리부인회장 팜마 여사를 포함한 동 부인회 간부 4명이다. 두 여행단이 서로 대구에서 만났다. 같은 오지리인들이 같은 한국 교회를 방문하는 데 한국의 양 관문을 이용해서 입단하고 또 한국의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한국 교회와 오지리 교회와의 사이에는 15년 전부터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구에는 오지리 부인회의 원조비로 세워진 건물들이 서 있고 또 이 부인회의 도움을 여러모로 받고 있다. 오지리부인회장 팜마 여사는 우리 교회에서 크게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선 우리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오지리 교회를 약간 알아보자.
오지리는 독일 남쪽에 있는 나라로서 면적 8만4천 평방km에 3분의 2가 산으로 우리 한국과 비슷하다.
오지리는 3ㆍ4세기에 로마인 풀로리안과 막시모 치명 성인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었다. 그 후 오지리 교회는 역사의 많은 파란 곡절 속에서도 점차 발전하여 인구 7백만의 89%인 6백30만의 신자를 가진 교회가 되었다. 따라서 오지리는 가톨릭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이 오지리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오지리 왕실이 가톨릭 신앙을 계속 보존한 이유도 있지만 홀란드 출신이었으나 예수회 관구장으로 오지리에서 활약한 교회 학자 까니시우스 성인이 교리를 문답 형식으로 엮어 가르쳐 신앙을 강화한 데 기인하기도 한다. 이 교리책이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교리문답의 시초인 것이다. 오지리 교회 내에는 여러 가지 단체들이 형성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에도 한국교회를 직접 원조하고 있는 단체는 오지리 가톨릭부인회다. 이 부인회는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어 가톨릭 부인들의 신앙생활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每年 봉재 애긍을 거두어 거기에서 모금된 것으로 포교지방을 원조하기도 한다. 봉재 애긍이란 봉재 때 매주 금요일 단식으로 저축된 재물을 성 금요일에 일제히 모으는 것이다. 매년 모금되는 액수는 40만 달러(한화 1억2천만 원)를 초과한다. 이 금액으로 오지리 부인회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서 대만 라오스의 교회를 원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봉재 애긍에서 모금한 액수 중 90%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한다. 여기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오지리 교회에 깊이 사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선 한국 교회가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점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우리 교회가 비록 가난하기는하나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비굴한 태도나 아첨하는 태도가 있다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사대주의 사상의 지배를 받았지만 교회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하느님 앞에 모두가 동등하며 크리스챤 정신에 의해서 상부상조해야 하는 것이다. 오지리 교회가 한국 교회를 금전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이 가능성은 애덕의 의무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지리 교회가 한국 교회를 예속시킬 수도 없으며 오지리 신자 몇몇 사람에게 한국 교회가 매여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인 자유를 완전히 누릴 권한이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한국 교회가 오지리 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 한국 교회는 오지리 교회에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정신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 속에서 개성을 찾고 젊은 교회로서 새로 받은 신앙의 기쁨과 신앙의 견고함을 오지리 교회에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오지리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해결책을 같이 모색해줄 수 있는 것이다. 도움 받는 데만 정신을 팔지 말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는지 한 번 정신을 돌려보자. 여기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어떤 선교사가 알젠틴으로 상당한 금전을 갖고 전교하러 떠났다. 그는 알젠틴 어느 시골에 가서 그 돈으로 현대식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그곳 신자들은 이것은 당신 성당이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면서 성당에 오지 않고 오히려 천막을 쳐놓고 그 신부가 거기에 와서 미사 지내 주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셋째로 한국 교회가 오지리 가톨릭부인회의 원조를 받는 데에 있어 통일성을 기했으면 한다. 각 교구마다 제 나름대로 팜마 여사와 교섭해서 많은 원조 받기 경쟁에 나서질 말고 오지리 부인회의 실정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따르는 계획적인 원조 요청을 해야 할 줄 믿는다. 그렇지 않고 지금 형식대로 계속하면 앞으로 인간관계 면에 있어서도 양자 간에 상당한 오해를 면치 못할 줄 믿고 오지리 교회의 한국 교회 원조도 단절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던 한국 교회와 오지리 교회와의 친교 관계가 계속할 것을 바라고 양 교회 발전이 하느님의 나라 건설에 크게 이바지할 것을 기대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