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여생의 첫날』
미사 때 부른 노래 중에 있는 귀절이다. 생소하면서도 퍽 신기한 느낌이 들어 그 의미를 되씹어 보게 된다.
우선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성실히 무죄하게 살라던 옛 성인의 말씀이 머리에 떠오른다. 지난 시간을 빠짐없이 돌아보며 정리하고 순간에 충실하려 함이다.
이에 비해『여생의 첫날』을 구가하는 태도는 똑같이 오늘에의 충실을 표방하면서도 그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자유를 그리워하고 진보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속마음이 이런 진취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표현으로 드러난 것일까?
우리는 때로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수가 있다.「씻을 수 없는 상처」「용서 받지 못할 죄」「고수하여야 할 전통」「아름다운 추억」-이런 숱한 표현들이 우리를 과거에 붙들어 맨다. 흔히 범하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한 그릇판단도 이에 속한다.
과거나 환경을 보지 말고 오직 현재의 나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 현대인의 소망이 아닌가? 나를 열어 보여 용납될 때 우리는 신뢰와 기쁨을 맛본다. 이로 인해 타인을 또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따사로운 인정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애써 부여잡고 있던 과거에의 예속에서 해방되어야겠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혹은 추하다 할지라도 한 점이나 한 획도 더하지 못할 과거를 조용히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 놓칠세라 아쉽거나 아니면 감당키 어려운 현재를 미련없이 가볍게 딛고 올라서는 것,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뒤이어 생각나는 요한 세자의 말씀『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내 뒤에 오시니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 만한 사람도 못 됩니다』매 순간도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가? 다음에 올 시간은 더 큰 체험과 실재의 인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이 말씀이 어쩌면 시간에 매여 사는 우리에게 시간의 의미를 풀이해 주고 그것을 영원에 결속된 것으로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초월적인 시간의 체험 창조적인 존재의 경험이 곧 영생이라고… 매 순간은 그저의 시간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이 그 안에 사는 우리도 매 순간의 자아를 박차고 나와 보다 크게 자라가는 것이 아닌가? 불신에 시달릴 때, 어둠을 헤맬 때, 영원히 스며드는 아름다운 체험 중에 안주하고 싶어질 때 이 말씀을 생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 번『오늘은 내 여생의 첫날』이라고 목청 높여 부르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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