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도 복자성월을 맞이해서 본보는 전국의 순교복자 기념성당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지면관계로 모든 교구를 다 찾아보지 못하고 다만 서울ㆍ대구ㆍ부산ㆍ수원ㆍ전주교구에 국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념성당들을 찾아본 결과 우리는 복자 현양사업에 대한 제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교회 신자들의 종교생활의 생태까지 엿볼 수 있었고 신앙의 깊이도 어느만큼 측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966년 병인년 박해 1백주년 기념 행사로 각 교구에서 복자성당을 건립하게 되었고 또 이를 촉구하는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일에 발표한「병인 교서」에『각 교구의 실정에 따라 금년에는 순교자의 기념성당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오로지 교형자매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물심양면의 아낌 없는 희생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복자 기념성당은 시종일관 경제적 곤란을 받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복자 기념성당마다 그러한 경제 곤란으로(서울을 제하고는) 본당의 구실밖에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념성당의 본래의 목적은 우리 선열들의 순교와 그 정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아가서는 하느님이 우리나라에 구원의 복음을 보내주신 데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또 우리 선열들의 얼을 이어받아 신앙의 본연의 자세를 이나라에 길이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목적을 제대로 완수하고 있는 곳은 너무나도 극소수여서 여기에 몇 가지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중 첫째가는 문제는 복자들에 대한 관심도이다. 복자 기념성당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오직 금전문제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금전에 앞서 모든 신자들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교회에 1백3명의 복자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정신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순교복자들의 생애와 업직과 죽음을 알고 나아가서는 복자들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방에서는 자기 고장의 순교자의 수도 성명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념성당을 외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만 세웠다 하더라도 이러한 경우에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처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복자들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순교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순교 선열들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나 다 한국 가톨릭 교회사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복자 기념성당을 찾아오는 신자들을 위한 자료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실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박물관 사진 전시회 등도 있겠고 성당 벽에는 1백3위의 순교자들의 성명과 순교 연월일과 순교 장소 등을 적어 붙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순교자 현양사업의 난점 중에 하나가 그들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절두산 성당에서는 전국적으로 유품 현상 수집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응모자가 적은 관계로 마감 일자를 연기하기까지 하였다.
여기에 또 다시 우리 신자들의 관심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순교자들의 유물이 그렇게 없을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것이 그들의 유물인지 분간할 줄 모르며 또 유품을 수집하는 의도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의 계몽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고 교리를 배우는 것만큼 우리 신앙이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미 발굴된 순교자들의 유품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 유품을 전국 각 기념성당으로 분산시켜 놓으면 아주 초라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유품은 한 기념성당 예를 들면 서울 절두산 성당에 모아서 보관 전시케 하고 타교구에서는 그 지방 특색을 살려 전시회관을 만들어 유품의 모형이나 사진을 전시했으면 어떨까 한다.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에 가장 아쉬운 것이 협동정신이라고 본다.
복자 현양사업에 있어서도 협동정신이 아쉽다. 내 것만을 찾지 말고 공동 이익을 위해서 각자가 좀 더 생각하고 희생하면 복자 현양을 통한 신앙의 부흥이 가능할 것이다.
거룩한 생활은 성인들이 했지만 성인은 후대 자손들이 만든다고 한다. 우리 교회에 복자만 있고 성인이 없다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그만큼 허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나친 억설일까. 복자성월을 보내고 나니, 우리 신자들이 좀더 큰 관심을 가지고 좀더 협조할 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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