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주일을 제외한 공휴일을 공부하는 날로 정하고「바티깐」공의회의 열여섯 가지에 達하는 공문서를 한 가지씩, 사계의 권위 신부님께 이를 해설하고 알기 쉽게 강론해 주십사 해서 신도들의 지식을 높이고 새로운 교회상을 부각시키는 데 노력하고 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는 70년도 서울협의회의 사업의 일환책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만시지탄은 있으나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일임은 다시 말할 것 없다.
그런데 항상 청강하는 신자가 일정해 있고 소속본당도 정해져 있어 그 수는 1백수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성서 구독율을 미루어 보건대, 집에서 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집에서 공부한다 해도, 조를 편성해서 토의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볼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요한 23세께서는 1959년 1월 25일을 기해서 교황에 취임하신 지 수 개월 만에 공의회 개최의 복안을 공표하였으나 벌써 사제생활 시절부터의 포부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이후 막중한 준비기간을 거쳐 1962년 10월 11일을 공의회 개최일로 정하시었고 1965년 12월 8일, 공의회기의 폐회를 선언하시었으나 공의회 이후의 뒷맺음, 이를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기구를 편성해서 체계화하는 데도 많은 시일과 노력을 소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요한 23세께서는 1963년 6월에 공의회의 씨를 뿌리시고 서거하시었으므로 거창한 일과 그 끝맺음은 바오로 6세께서 인계 받으신 셈이다.
네 가지의 헌장, 아홉 가지의 교령, 세 가지의 선언문으로된 이 공문서 외에도 많은 훈시와 지침을 발표하시었다. 전체적으로 2천 수백 명의 전 세계 추기경 주교님들의 투표에 의해서 만장일치와 다름없는 찬성율로서 결의되었었다.
예를 들면 홍보활동에 관한 교령은 2천1백31 투표 수에 대해서 1천9백60표의 찬성을 얻어 그 차이가 171표고 그리스도교 이외의 제종교에 대한 선언은 89표의 차, 종교 자유에 대한 선언은 76표의 차다. 그 외는 기껏 5ㆍ6표의 차를 나타냄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에게 가장 관심을 끌게 하는 교회헌장은 5표 차요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은 2표의 차 밖에 없다. 이 교령은 시대적인 절실한 요청으로 들 수 있겠다. 그보다도 오늘까지의 역적이 어딘가 잘못 됨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공의회의 성과는 세계적으로 따뜻한 호감의 눈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위 새로운 세대에 적응코자 하는 생기발랄한 교회의 모습을 세계에 제시해 준 것이다.
세계 안의 교회로서 교회의 확교부동한 자세를 표명하는 시대 조류와 그 호흡을 같이하는 근대화된 교회상을 전 세계를 향해서 외친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뒤늦게나마 이 공의회의 정신이 스며들고 있기는 하다. 미사 전례의 의식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정신적인 자세에 있어서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대적인 고아는 될 수 없는 일이다. 68년 7월에 전국 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가 대전에서 결성되고, 서울의 경우에는 뒤이어 10월에 서울대교구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각 본당 단위의 지역별 협의회가 구성되었다. 교회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여 무사안일한 태도를 지양하고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가지고 본래의「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수는 전체 본당 수 60여의 20%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해당 본당의 여건에 따라 그 기능이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한다. 이 여건이란 노골적으로 말해서 주임신부의 이해와 지도력, 그리고 평신도의 경의와 활동 능력을 들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각급 협의회의 구성 형태가 상향식이 되지 못하고 하향식으로 이뤄진 감도 있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있는 이유도 있기는 하지마는 어쨌든 이러한 사실도 과도기적 현상이기는 하나 조직 체계가 부진상태에 있게 된 후유증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여하튼 뚝은 무너졌다. 결국 한국 교회의 100년 묵은 침전탁수는 위에서 밀어닥치는 청신한 폭포수에 의해서 정화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미 그 조류를 받아들인 모범적인 본당도 더러 있긴 하다.
하지만 구우일모 격이 아닌가, 미구에 일부에서 이단시되면서도 공부하는 고독한 성직자, 이를 실천하는 성직자는 선구적 위치에 놓이게 마련이요 또 설익어 망동적인 평신도도 정상화될 것이다. 우리들의 당면한 과업은 하루 속히 80만 전 신도가『하느님의 종들의 종인 바오로는…』하신 교황 성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공의회 16종 공문서를 공부해서 그 정신을 체득하고 소화해야 할 일이며 이를 위하여, 우리 교회의 정통성이 살아 있다면, 공의회 의결 사항은 응당 준수되어야 할 것이므로 성직자의 평신도 교육에 완벽을 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수반될 것으로 본다. 직접적 교육이 불가능하면 이러한 세미나에 몸소 인솔 참석은 못할망정 적어도 이를 강조 종용만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자율적으로 우리 신자 스스로가 자진 청강하는 열의를 가지고 임하여야 될 것이요 소속본당 회장님들의 적극성이 아쉽다. 그러나 자발성도 한계가 있다. 능동적인 신부님의 관여가 없이 되는 일은 따로 있다. 상호간 권장 독려 모처럼의 공부하는 해에 많은 공부를 해서 제2차「바티깐」공의회 정신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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