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나는 해마다 「8ㆍ15」를 맞아 보낼적에는 중국의 동북변경지대인 만주를 마음속에 되살려보는 버릇을 갖게되었다.
만주에서의 한국 사람들의 생활-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희망이기도 낭만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타락이기도 설움이기도 한 것이었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그 모두를 믹쓰해서 생활화하다시피 해왔느니라고 해도 비유로서 빚나간 표현은 되지 않는다.
가장 기개있는 지사들, 가장 악질적인 반역자들, 가장 욕심 사납고 파렴치한 각종 투기상인들, 그리고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농민들이 모두 「실향민의 신세」라는 미묘한 감상의 기분으로 서로 얽혀 살아간 만주는 그 당시의 풍정으로 쳐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존과 생활의 종착지이자 지대였다고 할만한 고장이기도 했다.
본토 사람들도 피압박 민족의 처지로서는 같은 신세여서 그들과는 펑유의 정을 나누며 동병상인의 기분으로 지낼수 있었다.
이 「펑유의 정」은 실향민인 일부 선량한 한인들에게는 자위와 희망의 젓줄이기도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면 이 대륙은 다시 중국의 품에 안겨지게 될것이고, 그렇게되면 2백만 우리 교포들은 대륙의 개척자 대열에서 한중공영의 발판을 구축하는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희망의 보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 패전의 뉴스가 전파되자 눈감빡할 사이에 위만주국의 체제와 기틀은 혼란속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바로 전날까지 실향민으로서 같이 살아온 일부 교포들은 귀향의 대열을 거리마다에 넘쳐흐르게해서 문자 그대로의 아비규환의 속에 말려들게 됐다.
귀향 대열에 앞장선 사람들은 주민들에게 압박과 피해를 가장 많이 입힌 일제앞잡이들과 그들 가족들이었으므로 이를 테면 『부역자군상의 엑소더스(탈출)』였다고 할까.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열을 이은 귀향군중에 있었다.
2백만 교포들이 일제히 국내로 밀려들면 일본을 위시한 다른 외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과 함께 것잡을수 없는 혼란만 빚게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교포들의 귀향자제가 이중으로 건국에 이바지하는 길임을 이해시키는데 지도층의 뜻을 모우도록 발의했다.
①우리는 이 땅에 영주하는 대가로 대륙개발의 충실한 역군이 되는 동시에 ②한중 친선의 민간 외교진으로서 2백만 교포를 동원시키는 대기태세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침국열차(侵国列車)의 「최종반원(班員)」이라는 별명까지 얻어 받았다.
북위 38도선과 그 뒤의 휴전선으로 해서 내가 지향했던 재만(在滿)교포와 대륙의 경륜은 한갖 꿈으로 무산해 버렸지만 동시에 나는 또 다른 하나를 나의 체온속에서 무산시켜 버린 것과 같은 공허감을 안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8ㆍ15의 감격」이 나의 이성을 한결 더 역으로 냉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것이다.
「만약에 8ㆍ15가 우리에게 해방을 선사해 주지 않았더라면-」이것은 어디까지나 반설적(反說的)인 가공(架空)의 반문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나, 그러나 한번은 누구할것 없이 음미해 볼만한 문제꺼리였다.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 식민통치 체제를 분쇄하는 영광스러운 __위해 건국의 기틀을 닦아왔더라면-아마도 우리는 「8ㆍ15」를 맞이할 적마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말을 되풀이 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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