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내게 내일은 네게」이렇게 죽음은 닥칠 것이다.『사람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이 말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교회전례의 말씀이다. 죽음을 묵상하고 현세 쾌락과 물질에 넋을 빼앗끼지 말라는 경고의 말이다. 나는 지난 11월 2일 위령의 날에 공동묘지에 갔었다. 수없이 흩어져 있는 토봉들.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봉마다 잡초가 우거지고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떤 묘지를 가만히 관찰해봤다. 아무도 찾아온 흔적도 없고 이미 수삼년이 된 듯한 흙봉우리는 잔디가 벗겨지고 흙이 무너져있다. 비석도 없다. 이름 모를 풀이 보기 싫게 자라 바람에 이리 한번 저리 한번 흔들거리다가는 잠시 멎었다. 또 바람과 같이 흔들거린다.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낙엽이 두어 잎 잡초사이에 끼어 빗방울이 때릴 때마다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 속에 누웠을 이름 모를 선인(善人)을 생각해본다. 살았을 때엔 남달리 건강도 했건만 남달리 삶에 대한 의욕도 있었건만 얼굴도 예뻤고 그러기에 칭찬도 많이 들었건만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도 되었건만 집안도 넉넉했고 그래서 산해진미 맛있는 음식도 다 먹었건만 일도 잘했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생애였건만 지금은 버려진 한줌 흙, 자리를 넓게 잡은 것을 보니 친척도 많았고 돈도 많았나 보다.
그때는 수많은 사람들이『아직 더 살 나인데…』하고 슬퍼도 했겠지『아직 할 일도 많은데』하고 안타까와도 했겠지. 울며불며 같이 죽자고 풀을 쥐어뜯으며 땅이라도 꺼져라 통곡도 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흐르고 내일이 바빠서「마음은 있는데」「가봐야 할 텐데」핑계 핑계하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잊혀진 한줌 흙, 이것이 바로 인생의 말로구나 이것이 세상이고 이것이 인정이구나. 이것이 형님이고 이것이 친구구나, 이것이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구나, 내가 아껴주고 도와주고 내 것같이 보살피던 내 사람이구나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집도 지었지, 오래오래 살려고 나무도 심었지, 지금은 그 집에 누가 사는지, 그 나무 그 가구는 어떻게 되었는지 내 사랑하던 잉꼬 한쌍은 누가 차지했는지 아! 모든 것은 헛되구나 모든 것은 지나갔구나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 나의 온갖 정성을 쏟은 내 사업, 그토록 아끼던 그 물건들 나를 찾아주는 이 한사람 없고 내 손때가 묻고 내 자신이 스며들은 그 전부는 간곳이 없구나. 이렇게 인생이 허무하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내일을 꿈꾸고 부푼 가슴을 쉴새없이 삶의 고동으로 꽉 채워왔는데 왜 죽어? 무엇 때문에 죽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고, 한없이 울부짖어도 안타까와해도 아-메아리 없는 하소연 허공에 초가을 바람만이 차다.
인생에 가장 확실한 것이 있다면 너도 나도 죽는다는 사실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인생은 현명치 않아 죽음을 말하면 오만상을 찡그리고 곧 죽을 사람에게도 오래오래 살라면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죽음, 너는 무엇이기에 인생의 온갖 것을 집어삼켜 버리는가. 인생의 희비애락이 한순간에 끝장이 나는구나. 고통도 즐거움도 걱정도 행복도, 그러나 죽음이 앗아가지는 못하는 단 하나의 것은 있다. 내가 세상에 살 때에 착하게 의롭게 살았다면 그것은 죽음아 너의 것이 아니다.
그것만은 내 것이다.
나의 모든 재산 모든 명예 모든 권력과 악업은 너의 것이고 죽음의 전쟁에서는 어떤 전략가도 이기지 못한단다. 그러나 내 착한마음은 너를 이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