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리오성월」의 마지막 주일이다. 한 달 동안 묵주와 얼마만큼이나 더 친했던가를 반성할 때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일상이 그토록 분주했다는 핑계만으로 그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을까. 섣불은 핑계를 꾸며 댐으로써라도 양심이 편해지길 바라는 것은 모든 인간 공유의 교활하면서도 심히 어리석은 잔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뭐 그 조그만 형식을 가지고 양심 운운을 들먹거리느냐고 혹자는 우스워하기도 하리라. 모든 일상을 하나의 커다란 기도로 치고 살면 되지 않는냐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다. 그러나 일상을 계속적으로 기도화를 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동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형식이라면 다만 억설일까. 형식에 등한하다는 것은 그만큼 신으로 향한 내면의 등한을 입증하거나 적어도 조장한다는 것쯤은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분명히 체험할 수 있었을 터이다. ▲신심생활의 모든 가견적 사물, 즉 교회나 성상ㆍ기도의 제형식 등을 무조건 유치하게만 보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가는데 그런 조류가 내포하는 모종의 위험에 대해 한 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가견적 사물을 목적으로 둘 수야 물론 없지만 인간의 인식구조를 감안할 때 감각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는 것만큼 불당한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관심해야할 바는 오히려 신심행사의 감각적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거기에 화응함으로써 스스로의 내적 생명을 보다 탄력 있게 심화 확장시키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걸핏하면 안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인간 본성인 만큼 더욱 그럴 것이다. ▲『외형에까지 미치는 내심은 내재에 그치는 내심보다 더 내적인 내심』이라 한 어느 성자의 얘길 음미해 보자. 크리스찬적 생의 강렬한 밀적도를 높이기 위한 모든 방식은 언제고 흔쾌히 긍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형식 무용론을 펴는 소년적 치기는,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경우가 그렇듯이, 나이 들어야 치유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우둔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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