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을 가리켜 우리의 후손들은 무슨 시대라고 할까 하는 말을 우리는 가끔 듣는다. 그때마다 아마도「파워」시대라고나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혼자 씁쓸히 웃게 된다. 그만큼 오늘날의 경향은 경쟁적 힘의 과시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 곁들여 교회 사정을 묻는다면 새삼 심각해진다. 특히 가톨릭시보에 게재되는 독자 논단을 읽어보노라면 거의 반 이상이 무슨 시위의 경쟁 같은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대개 어느 단체든 그것이 잘 돼 간다면 동요가 없으나 안 돼 간다면 서로 싸우는게 통례다. 예컨대 어떤 주식회사가 있어 사업이 잘 돼 간다면 그 회사의 주주들은 도산에 대한 불안이 없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다. 따라서 자질구레한 일로 다투지는 않는다. 이미 상당한 분배를 받았고 수입은 얼마든지 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임직원의 과실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대하다. 왜냐하면 그쯤을 가지고는 회사의 수익에 아무 지장도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에선 탈락하는 주주가 있을 수 없고, 새로운 투자주가 참여하게 되니 자연 회사의 주가는 상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회사가 잘 안 되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선 주주들은 투자액의 안전을 위해 사업을 망치게 한 장본인을 색출하여 추방하려 하고 따라서 책임 전가, 변명, 그리고 대립, 분열이 일어나며 주주총회는 항상 소란해진다. 주주들은 또 분배 몫이나 생기면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 할 것이며 결손 처분에는 조금이라도 덜 부담하려 하기 때문에 푼돈을 가지고도 끝까지 따진다. 물론 임직원의 과오는 아무리 사소해도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상호 불신이만 연됨은 물론 도산 전에 다소라도 밑천을 건져 보겠다는 마음으로 주식을 처분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런 회사에 불순한 목적이 없는 한 새로운 선의의 투자주가 생길 까닭이 없고 임직원은 회사 일보다 회사 해산 후의 생계 유지에 더 신경을 쓰게 돼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산업 스파이」라는게 있어 잘 돼 가는 회사 안에도 파괴 공작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잘 돼 가는 회사라면 웬만한 공작으로 동요되지 않기 때문에 군소 주주나 임직원의 동향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안 되는 회사라면 사소한 공작에도 곧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군소 주주나 임직원의 동향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회사업이 잘 돼 간다면 어떻게 보다 나은 교회로 발전시키느냐에 집념할 수 있고 대범하며 사소한 시비에는 관대해진다. 그러나 잘 안 될 때는 서로 책임을 묻게 되고 불관용이 지배하게 되어 폐쇄적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선 자기를 지키기에 급급한 까닭이다.
지금 교회 전반의 사정을 바라본다면 창의력이 감퇴되는 느낌이 있어 불안함을 금치 못할 여러 가지 징조들이 나타나는데 한국 교회의 유일한 시사지인 가톨릭시보의 독자 여론이라는 것이 기껏 책임 추궁 또는 책임 전가 따위로 메워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일반적 흐름이라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즉 교회가 잘 돼 가는 중이라면 수준 미달의 횡설수설(?)에 대해 침묵하는 아량이 있었을 것이고 선의의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관용이 있었겠는데 무슨 천지개벽이라도 생길 듯이 기를 쓰고 추궁하고 변명하고 역습하는 이런 현상들이 한 푼 두 푼을 가지고 다투는 자질구레한 싸움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어떤 각도에서 보아야 할지, 즉 무화과 꽃이 피면 여름이 가까워진 줄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주인의 곡식 밭에는 가라지도 자라는 법이라고 알아야 할지 가볍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심산유곡에 소리 없이 스쳐가는 낙엽 소리처럼 생겼다가 사라져 버릴「아마추어」들의 논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유수한 필진도 적지 아니 참여하는 대화의 광장이니 만큼 무엇인가 희망적이고 진취적이고 창의력에 넘치는 긍정적 토론 무대가 돼야겠다는 것이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뛰는 꼴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긴급 동의를 제출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