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론단을 애독하다 보니 결국은 한마디 하고 싶어져서 펜을 든 것이다. 지난번에는 시내 신설동의 어느 독자와 모 신부 사이에 본란을 통해서 대화가 오고가는 것을 흥미 있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문화재의 일부인「칠성각」을 뒤로 물려가면서까지 새로 확장한 도로가 완성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로마 교황 대사관의「뾰족한 담 모퉁이가 길 한복판을 차지한 채 그대로」있어서「아침 저녁으로 내 무딘 가슴을 아프게 한다」(10월 18일 본란 참조) 는 선의의 출발에서 전번 론쟁과 서로 통하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 건이 다 광의의「호교」적인 정신에의 발로라는 것이며 또한「현실을 보는 눈」이 얼마나 순수하고 겸허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점이다. 필자는 마침「교황대사관」의 경우를 내용적으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사팔뜨기」를 면전에 보고 네 눈은「사팔뜨기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일 뿐더러 그러한 불행의 책임이 그 본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본인은 그 불행을 지니고 견디며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대사관의「뾰족한 담」도 이와 비슷한 것인데 다만 선의의 고발자가 그 실정을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은 일년전부터 그 토지를 도로를 위해서 양보하기로 결정을 본 것이며 로마 교황(聖廳)의 허가까지 끝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현실적으로 그「뾰족한 담」이 그대로 방식되어 있어서「가톨릭의 옹졸한 정신」의 표현처럼 생각되게 하여 아프게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 문화재 관리국 쪽에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고발자」는 결코 그러한 가혹한 예언자적인(?) 호교론을 외국 대사관에 대해서 더구나 바티깐 시국의 대표자인 교황대사로서는 참을 수 없는 망언을 공표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나라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교황 대사께 죄송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것이니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겸허한 마음으로 사과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일로 해서 도리어『네 눈은 사팔뜨기다』라는 손가락질을 시민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덜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교황대사관 측에서도 섭섭한 마음을 잊어 주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이와 상통한 면을 가졌다고 한 전번 사건을 아울러 생각하기 위해서 파스칼의 한 구절을 상기한다.
『나는 육체적인 불구자는 동정하지만 정신적인 불구자는 동정하지 않는다.
지난번 논쟁 사건에서 나는 진정으로 평신도의 호교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한국 가톨릭 교계의 정신적인 질병을 발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잊혀지지 않는 말은『최상의 호교는 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주장이다.「교황대사관의 뾰족한 담」같이 눈에 거슬리는 불구에 비하면 차라리 행복스러운 불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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