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사전에 의하면 신문이란『새로운 소식이나 비판을 빨리 보도하는 정기 간행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문의 정의에서 신문의 사명을 크게 두 가지로 알아들을 수 있으니 첫째는 새로운 소식의 신속한 전달이요 둘째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인간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봄은 크게 잘못이 없을 줄로 안다. 이러한 신문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가톨릭시보는 신문으로서의 후자의 사명감을 도외시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여기에 대해서 가톹릭시보는 신문이 아니고 시보라고 변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보는『때때로 알리는 보도』라고 정의되어 있으니 뉴스의 전달로써 그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톨릭시보에도 사설란을 두고 있으니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문의 두 가지 사명을 모두 느끼고 또 실천하고 있음을 사실로써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교회도 다른 사회 단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구성된 단체라면 교회의 인간적인 면에는 분명히 비판 받아야 할 사실이 있을 것이요 비판을 통해서 시정되어야 할 요소가 또한 있으리라고 봄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교회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단체이므로 모두가 자아 반성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하느님의 뜻대로 훌륭하게 해결하고 있다고 할지 모를 일이다. 스스로 이같이 생각하는 성직자나 신자가 있다면 자기와 남을 기만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일러 주고 싶다.
가톨릭시보의 비판적인 글이 교회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혹자는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스승 예수를 세 번씩이나 배반한 씻을 수 없는 베드로 사도의 오점을 한 장의 신문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만천하에 공개하고도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동시에 초대 교황으로 삼으신 하느님의 지혜를 어떻게 알아들을 것인가? 또 하느님은 왜 12사도 중 한 사람인 유다스가 스승 예수를 팔아먹은 인륜배리의 사실을 은폐하지 않으시고 성경 안에서 그토록 자세하게 공개했을까? 하느님의 지혜를 어리석다 할 것인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억제할 권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중대한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리를 말해야 하고 오류를 비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만일 교회 내에서 언론의 자유를 억제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의 존재 가치를 말살시키는 행위임을 알야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언론 기관은 교회의 제반사에 관해 무분별한 비판만을 일삼음도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모든 일에는 현명을 기해야 하고 분수를 지켜야 함은 당연지사라고 누가 인정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톨릭시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교회의 제반사에 관해서 너무나 피상적인 문제만을 다루어 왔음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시보사로서도 신문의 사명감을 인식하고 그 사명 수행에 성실을 기울여야 온 줄을 알지만 시보의 각 면을 넘길 때 흔히 하고 싶은 말을 못다한 심정이 기사의 편집 구조에까지 짙게 나타나 있음을 느끼는 것이 독자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다. 편집인의 재량에 관한 문제이기에 양해 있을 줄 믿으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10월 18일자 시보 3면 상단 기사에「교구 행정부서장 3명 선출」이라는 제하에서 서울대교구 신부 전체회의는 한국 교회 모든 신자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서 교구본부 행정부서장 3명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함으로써 교회사에 새로운 유례를 남겼다고 기사 실명을 하고 있다. 위의 사건이 교회사에 있어서 발전을 향한 새로운 유례라고 사건을 진단하였으면 또 더욱이 그것이 한국 교회 모든 신자의 비상한 관심사였다고 판단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라면 왜 좀 더 일찍이 교회 발전을 위한 비전을 한 번도 제시하지 않았는가 묻고 싶다.
교회사를 되돌아 볼 때 교회가 저질러놓은 많은 잘못은 아집과 독선의 자기 도취 속에서 살아온 것이 그 중대한 원인의 하나임을 속직히 고백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아직도 이런 타성에 젖어서 인간 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에 눈을 감고 있다면 하루 속히 이런 시대착오적인 상황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가톨릭 언론인들은 그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날로 변천하는 인간 사회 속에서 교회가 봉사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도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날로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른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특별히 오늘날 가톨릭 언론인 제위의 사명감을 일깨우는 말씀으로 생각된다. 가톨릭 언론인 제위께서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보다 풍부한 지혜를 얻길 바라면서 또한 교회 발전을 위해 보다 큰 헌신이 있길 기대한다.
▲투고 환영합니다. 교회 내외 어떤 문제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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