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는 뭔가 공들였던 것들이 하나 둘 내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공연히 허전할 때가 있다.
전에는 사직동이나 명륜동 골목을 지나노라면 몇 집 건너 다듬이질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어 정갈한 부인네의 생활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전차를 타면 곱게 기워 신은 아이들의 양말 뒷꿈치에서 그 어머니의 알뜰한 사랑을 보는 것 같고 샘터에 가면 밤새 곱게 곱게 고인 맑은 샘물을 남보다 먼저 긷기 위해 동 트기 전부터 마을 처녀들은 모여들곤 하여 찰찰 넘치는 샘물만큼 맑고 순결한 마음씨와 정성을 대하는 듯했었다.
청나라 선비인 沈復의 浮生文記에는 그의 아내 운(蕓)이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녀는 차(茶)를 아주 정성스레 달인다는 것이다. 연꽃은 낮엔 피고 저녁이면 다시 오므라들었다가 다음날 다시 피는데 운이는 고운 비단 주머니에 엽차를 담아서는 저녁에 화심(花心)에 놓았다가 아침에 다시 꺼내어 차를 달이곤 하여 그 향기 이루 말할 수 없이 그윽했다는 것이다.
이런 여인은 생활의 사소한 멋을 즐길 줄 아는 여인이다. 또한 정성이 갸륵한 지어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런 여인이나 그런 정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가는 시대에 이런 푸념은 분명 시대착오일 테지만 그런 것에 눌려 여인네들의 본래적인 정갈함이라든가 정성과 슬기로운 생활 미학 같은 것들이 차츰 쫓겨나고 버림 받지를 않나 하는 생각이 나를 종종 편안치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회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눈부시고 남성들에게 못지 않은 능력을 과시하는 예를 볼 때마다 마음 뿌듯한 감회를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무엇인가-사소한 것일는지 모르지만-여성적인 슬기와 자상함과 정성 같은 것을 잃지 않을까 걱정인 것이다.
여성은 여성적일 때 강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날로 거칠어만 가는 사회에서 여성들마저 그 부드러움과 정성과 사랑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사회를 감화시킬 것인가?『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음식의 맛을 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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