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르던 어릴 때 성세성사를 받은 나는 오랫동안 영세시의 경험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궁금히 여겨 왔었다. 개종 수기를 쓰신 분들이 감격적으로 술회하는 체험담이나 어려서 교리시간에 배운「성세의 효험」들을 합해 보아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끔 영세를 하겠다고 인도를 청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작은 영혼 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이끌고 있는지 신기한 마음이 앞섰다.
성세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생활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는 피부 속에 깊게 배어 버린 채 나날이 가져오는 부르심 속에 나는 떠밀리고 말았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 지켜야 할 약속들, 피하고 싶으나 면치 못할 충돌들, 시계 소리만큼이나 절박하게 어김없이 나를 요구해 오는 삶의 아우성.
상상 못하던 소임 터무니 없어 뵈던 처지에 서서 그래도 순환을 지속시켜야 하는 요구 때문에 달래도 보고 발버둥도 치고 쓰러져 버리기도 몇 번, 자신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을 느끼고 끝내 그 파편들마저를 깡그리 잊고야 말았을 때 어둠 속에서 희뿌연히 밝아오는 목소리『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눈을 씻고 다시 들어보는 음성. 귀익은 말씀처럼 날카롭게 폐부를 찔러온다. 내게는 처음으로 명확해진 의미, 이 말씀이 생생해졌을 때 갑자기 만상이 팽그르르 돌아 하나로 엉켰다. 시간이 정지해 버린 점, 이윽고 따스한 강물이 흐른다.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않으면…』
물의 세례는 우리가 이미 받은 의식으로서의 씻음, 자연인으로서의 새로 남의 상징적 표현이며 은총의 씨 뿌림이라면 성신의 세례는 우리 안에서 자라는 이 씨앗의 성장이며 결실이리라. 자라는 성사, 이로 인해 우리는 거듭거듭 다시 날 수 있다.
새로 남의 귀결은 언제나 좀 더 진짜에 가까와지고 만상이 하나임을 살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새로 나느냐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시던 권고『바람은 불고 싶으 때 분다』고『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정녕 이는 맞으려니와 희망은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린다. 한 번 오신 분은 다시 오시리라는 바램, 아니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 이 믿음 안에서 마중을 위한 지름길을 걷는다. 오늘의 평범을 잠잠히 가꾸는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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