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루머(RUMOR)가 풍성하던 때도 있었을까? 신문이 배달되면 지면 구석의 1단 기사를 먼저 읽는 버릇은 또 무슨 연고인가 어떻게 된 셈인지 요즘 사람들은 활자화 된 보도기사보다도 루머에 더 신경을 쓰는 듯 하고 그것에 더 신빙성을 주는 우리말로 유언비어 소문풍문 등으로 표현된다. 루머는 매스콤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사실의 공표가 제한을 받을 때 생긴다. 비밀리에 유포되는 루머가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루머는 그것이 전달되는 도중 자꾸 보충되는 과정에서 변질될 여지가 많은 위험성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민의를 대변하는 루머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해야만 욕구충족이 되는 그런 입장이다. ▲대화의 표식임을 스스로 천명하는 교회에도 루머가 없을 수 없다. 어떤 때는 루머가 공식보도보다 훨씬 더 풍성할 경우가 없지 않다.「교회 간행물들의…관보일변도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평을 받아야하는 형편이니 루머의 유포는 어쩔 수 없다. 더욱이 평신자의 교회참여에 대한 성직자들의 소극적인 반응과 일부 평신자들의 과잉참여 의욕이 상호충돌하는 현상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상은 하느님의 백성사이에 모든 이성적인 논의나 제언이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평신자들은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통해 느닷없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을 한꺼번에 수여받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교회내서 호교심의 독점현상과 공의회정신에 역행하는 속성이 쉽사리 소멸될 성질도 아니었다. 이런 형편에서 하느님의 백성 대부분은 18세기의 신앙생활 양식에 19세기의 사고방식을 갖고 20세기의 태도로 21세기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같은 현상 역시 루머의 요인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 루머가 아주 자취를 감추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루머가 건설적인 것 이냐 아니면 악성을 띄어 파괴적인 것이냐에 있다. 어쨌든 형제애로 얽힌 공동체에선 비건설적인 루머는 없어야 한다. 평신자들이 교회 내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고 가톨릭 언론인이 합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그때의 루머는 적어도 긍정적인 루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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