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노라면 길 양쪽의 농가는 스레트 기와 양철 등으로 지붕을 입힌 위에 자색 붉은색 푸른색으로 칠하여 겉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얼마나 농민들의 생활이 향상되고 소득이 늘어났으면 저렇게 개선되었나 하고 생각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속임수 같기만 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이농자 수는 69년 한 해만 보더라도 31만9천 명의 농민이 짐을 싸고 정든 고향을 등지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의 경우 도시 근교의 건설사업에 일자리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자고로 農者는 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우리 민족은 땅에 뿌리를 박고 흙을 만지며 살아왔다. 그 농민이 흙을 버리고 농토를 떠나는 데는 크나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65년도를 기점으로 하여 공업의 고도 성장은 농공 간의 소득 격차를 급격히 벌어지게 하였을 뿐 아니라 저미가(低米價) 유지라는 물가 안정책에 눌려 농업 소득이 상대적으로 향상 못하고 공산품의 가격 상승의 템포가 농산품의 그것을 앞질러 결과적으로 농촌 가계를 악화시켰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들은 항시 원시적 소농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도시를 비롯하여 중소도시의 생활권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자연히 농촌생활권이 흡수되어 그들의 생활 근거가 도시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조국 근대화에 있어 공업화가 가장 중요시되나 이에 못지 않게 농업 근대화가 뒤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기실 농민들이 농업이 싫어서 땅을 버리고 떠날 때 한국의 근대화 작업도 뿌리부터 흔들리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다행히도 정부는 추곡 매수 가격을 쌀 한 가마에 7천 원으로 결정하고 농업 증산에의 용단을 내리고 있으나 농공 격차를 축소하고 농민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미가(米價)정책이 계속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농민들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하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며 나아가 농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자기 고장을 자기 손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새로운 자세를 마련해 주어야 하겠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농민들은 물질적 면의 개선을 찬양하면서도 윤리와 인간관계에서 가치 질서가 붕괴되어 감에 고민하고 있다고 어느 학자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유의하여 농민들의 정신적 가치 창조에 노력해야 하리라 믿는다. 흙과 땅에 깊이 뿌리 박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농민의 의식 구조는 급격히 변천하는 근대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사실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톨릭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회는 농민들이 땅 위에 확고히 발을 딛고 흙에 묻혀 경자유전으로 자기 토지를 갖고 농업에 종사케 하며 또한 전통적으로 젖어 있는 샤마니즘을 극복시키면서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 영원한 희망을 주는 농민사목에 힘을 기울여「흙의 신학」을 수립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와 같은 흙의 신학이 확립될 때 한국적 신학은 또한 완성되는 것이며 진지한 농민사목을 통해 농촌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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