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은 한국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세 번째로 맞는「평신도의 날」이다. 첫 번에는 구세주 대림 첫 주일로 정했었으나 이 큰 축일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금년부터는 그리스도왕 주일 전주일을「평신도의 날」로 고정시키고 앞으로는 변경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평신도의 날을 두 차례나 겪었음에도 아직 이 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후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를 강조하면서부터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이 재강조되었다. 물론 평신도라 함은 성직자나 수도자 이외의 모든 신자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평신도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백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상 하느님의 나라를 넓히고 사회를 그리스도화해야 할 의무를 다같이 지고 있다. 이런 의무를 실천하는 모든 일을 사도직이라고 한다.
성직자나 수도자에게는 그들에 해당하는 특유한 사도직이 있고 또 평신도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사도직이 있다. 과거에는 우리 교회가 지나치게 성직자 위주의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직이라 하면 마치 성직자나 수도자만이 특권 사항인 양 착각하고 평신도들은 오직 성직자의 명령에 순명하면서 보조적 역할만 하면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일이었다. 이번 공의회에서는 이것을 명백히 시정하도록 촉구했다.
「교회헌장」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의 총칭 또는 구원의 성사로 규정하고 또한 교회의 구원이며 하느님의 백성인 평신도의 위치와 그 사명에 대해서는「평신도 사도직 교령」에서 명시했다. 즉 거기에서는 평신도들은 평신도 고유의 사도직을 수행할 의무와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면 평신도 고유의 사도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평신도는 세속 즉 사회 안에 살고 활동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세속 즉 가정을 떠나서 교회를 위해 전적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직능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도직을 직능적 사도직이라고 한다. 그 반면에 평신도들의 교회적 사명을 지칭해서 일반적 사도직이라고 한다. 요컨대 평신도들은 가정이나 직장 즉 사회생활을 통해서 그 사회 안에서 활동하되 보통 사람들과 달리 크리스찬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무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행동하고 말함으로써 자기의 지위와 능력의 한도 안에서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그리스도화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평신도 사도직의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평신도 사도직이 강조됨에 따라 어떤 이는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마치 평신도의 지위가 향상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고 교회 내부에서 어떤 활동이나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을 사도직의 본무로 여기는 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평신도 사도직의 무대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소속한 가정이나 이웃 그리고 직장이나 그밖의 모든 사회생활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활동은 사회 안에서의 활동을 잘 하기 위한 역량을 배양하고 은총과 도움을 얻는 근원으로서의 부차적 사도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신도들 중에는 흔히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수가 있다. 미사에 참예하거나 성사를 보거나 기타 성당 안에서의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고 또 이것만 제대로 하면 자기의 신앙생활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밖의 일상샐활은 신앙생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신앙 없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도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이 우리 사회에 무슨 유익을 주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봉사하러 오신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있다. 진정한 크리스찬 생활은 자기 성화를 기하는 동시에 타인의 성화를 즉 사회의 성화를 기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누룩이 되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고 있다.
이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사도직이다. 우리의 착한 행동과 말만이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 안에서 이것을 수행해야 하겠다는 결의를 굳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평신도 사도직도 평신도들의 노력만 가지고서는 이룩되기 어렵다. 우리 교회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직자의 훌륭한 인도에 의해 발전돼 가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 사도직 운동도 성직자들이 이를 이해하고 권장하면서 올바르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평신도가 지니는 그들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사회 안에서의 위치를 잘 활용하고 효율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기능을 다하도록 북돋아 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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