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수녀가 되고 싶어하는 한 지원자(데레사)에게 급히 연락할 일이 있어 전화기를 들었다. 데레사네 집에 전화가 없으니 하는 수 없어 옆집으로 걸어 바꾸게 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받은 모양이다. 자기와는 상관 없는 귀찮은 전화이니 끊으려는 목소리다. 급한 사정을 애소하여 간신이 바꾸게 되었고 대신 데레사의 어머니가 받았다. 본래부터 아는 터라 나의 이름을 밝혔으나 알은 체도 않고『데레사가 집에 없는데요』하는 담담한 음성이 들린다. 기분이 좋지 않아 끊으려 했으나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 더욱 가다듬은 음성으로 데레사에게 이러저러한 도움을 베풀려 찾는 거라고 밝혔더니 그 어머니의 목소리는 금새 부드럽고 상냥해지면서『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수녀님이십니까?』하며 반갑고 미안해하는 표정의 음성이다.
그 다음부턴 밝고 재미있는 대화가 오갔다. 전화를 끝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를. 또한 아는 사람이 모르는 체할 때의 씁쓸한 기분을. 그렇다. 좀 과장된 표현 같긴 하나『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 어느 분의 말이 옳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건 말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생활의 한 토막이다. 그러나 이 시답잖은 일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진리를 캐내고 싶다.
즉 이 일을 두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싶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생활 태도를 비겨 보며 또한 하느님을 알고 믿는다면서도 모르는 체 담담한 관계인 양 무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며 먼저 자신을 꾸짖고 싶어진다.『영원히 잘 사는 길은 순간마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느님을 알고도 모르는 사람마냥 살아오지 않았나 싶기에 앞으론 진실로 영원하신 그분의 사랑을 알아들어 기쁘고 다정스런 응답을 해드림으로써 더욱 복된 자녀가 되겠노라 다짐하였기에 이 진리를 깨닫도록 전화기 앞에서 자기의 딸을 찾는 이 수녀에게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해 주었던 그 지원자의 어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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